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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다르다” 며 간 해외연수 … 보고서는 공무원이 대신 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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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방의회가 정신을 못 차렸다. 의원들 해외여행 비난이 일자 선진 자치를 잘 배워 개인별로 보고서를 내겠다던 대주민 약속도 거짓이었다. 충북 청주시의회 얘기다.

 이 지역 의원 26명은 지난달 4개 상임위별로 6~9일간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중국·일본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기획행정위원회는 중국, 재정경제위원회는 미국과 캐나다를 각각 둘러봤다. 복지환경위원회와 도시건설위원회는 각각 뉴질랜드·호주와 일본을 다녀왔다. 선진행정 벤치마킹과 의정활동 명목이었다. 경비는 6200만원이 소요됐는데 이 중 주민 세금이 4782만원, 개인부담은 1418만원이었다.

 당시 청주시의회 연철흠 의장은 해외연수를 앞두고 ‘외유성 호화 여행’이라는 비난이 일자 “개인별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의정백서에 게재하겠다”고 주민들에게 약속했다. 의원들도 “외유성 연수를 하는 다른 지자체와 우리는 다르다”며 호언장담했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의원들은 이유를 댔다. ‘2인 이상이 단체로 여행한 경우에는 대표자를 보고 책임자로 해 합동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다’는 (청주시의회)규정을 거론했다. 개인별 보고서가 아닌 종합보고서를 제출키로 한 것이다. 청주시의회 김동락 사무국장은 “보고서를 개인별로 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서면으로 낼 필요도 없다”며 “ 토론회에서 한마디 정도 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청주시의회는 23일 ‘공무 국외여행 귀국 보고회’를 연다. 상임위원회별로 연수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발표하는 종합보고서는 의원들이 직접 작성하지 않았다. 4개 상임위 가운데 재경위를 제외한 나머지 3개 상임위는 의원들의 의견을 듣고 전문위원실 공무원이 대신 만들었다. 대필한 것이다. 개별 보고서를 만든 의원은 한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25명의 보고서는 연수에 동행한 상임위 소속 공무원이 작성했다.

 개인 보고서를 상임위 전체 보고서로 바꾸기도 했다. 재경위가 발표하는 종합보고서는 육미선(44) 의원이 작성한 것이다. 육 의원은 19일 개인 자격으로 재경위원장에게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이날 오후 보고서가 상임위 보고서로 바뀐 사실을 알았다. 상임위에서 ‘재정경제위원회 공무국외여행보고서-육미선 의원’에서 ‘육미선 의원’이라는 문구를 빼고 전체 보고서로 둔갑시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육 의원의 동의는 없었다.

 육 의원은 “전문위원실에서 작성한 내용은 부족한 점이 많았다”며 “개인 자격으로 (보충해)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목청을 높였다. 그는 “보고서 자체가 완벽한 것도 아니지만 이름을 뺀 것 자체가 문제”라며 “의장과 상임위원장에 항의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연철흠 의장은 “재경위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육 의원이 주도적으로 준비해 (육 의원이) 제출한 보고서를 재경위에서도 전체보고서로 생각했던 것 같다”며 “(나도) 육 의원이 대표로 작성한 것으로 보고받았을 뿐 이름을 삭제한 사실은 몰랐다”고 말했다.

청주=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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