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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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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96년 프랑스 국민들은 바바라 상송이라는 21세의 여성에게 주목했다. 1m80㎝의 늘씬한 키에 또렷한 이목구비만 보면 뭇 여성과 다를 바 없는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였다. 5년 전 에이즈에 걸린 보균자라는 사실만 뺀다면. 그녀는 고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만 17세 때 사귀던 남자친구와 첫 불장난에서 에이즈에 감염됐다.

 에이즈 공포가 휩쓸던 당시 상송은 사회 편견에 맞섰다. 에이즈에 고통받게 된 자신의 인생을 『17살의 사랑은 진지할 수 없다』는 책으로 그려냈고, 『나의 17년』이란 TV영화로도 제작했다. ‘모자 없이는 절대로’(jamais sans chapeau, 모자는 콘돔을 뜻함)라는 에이즈예방단체에서 활동하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언제 닥칠지 모를 내 인생의 마지막이 항상 두렵다”는 그녀의 절규는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상송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감염된 6000만 명 중 한 명이다. 유엔에이즈(UNAIDS)에 따르면 HIV 보균자 가운데 2500만 명이 이미 숨졌다. 2008년의 경우 270만 명이 새로 병에 걸려 HIV 보균자는 3300만여 명이 됐으며, 200만 명은 죽었다. 특히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에 전 세계 에이즈 환자의 67%가 몰려 있다.

 에이즈는 81년 미국 LA에서 5명의 동성연애자가 에이즈 환자로 판명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2년 뒤엔 파스퇴르연구소가 HIV를 발견한 뒤 ‘20세기의 천역(天疫)’으로 불렸다. 이후 세계는 급격히 확산되는 에이즈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퇴치에 노력해 왔다. 하지만 90년 1000만 명 이하이던 HIV 보균자는 2000년대 들어 3000만 명을 넘어섰다. 신생아와 아동이 새 보균자에 가세하기 때문이다.

 가톨릭은 인위적인 피임기구인 콘돔에 반대해 왔다. 그런 바티칸이 “에이즈를 막는 콘돔이라면 예외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며 변화를 시사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최근 “HIV 감염이라는 악(惡)에 맞서 남자 매춘부가 콘돔을 사용하는 예는 ‘교화의 첫 걸음’”이라고 말했다.

 에이즈는 정복하지 못한 질병으로 남아있다. HIV백신이 나올 때까지 에이즈 예방을 위해 콘돔 사용을 UNAIDS는 권장한다. 상송은 “직업도 갖고 남편과 가정도 꾸미고 싶다”고 했다. ‘제2의 상송’이 나오지 않도록 돕는 것도 종교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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