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의 마술’ … 소형 원룸 분양 받아도 무주택 자격 유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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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호 24면

17일 오전 서울 강동구 길동의 지하철 5호선 길동역 부근. 큰길을 따라가다 보니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전 평형 청약 마감, 최고 경쟁률 17대 1’이란 대형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부동산 투자자문회사인 저스트알이 사업 시행, 현대아산이 시공을 맡은 ‘현대웰하임’이란 도시형 생활주택의 견본주택(모델하우스) 현장이었다.

‘도시형 생활주택’이 뜬다

도시형 생활주택이란 주로 1~2인 가구용으로 짓는 소형 원룸·연립·다세대주택 단지를 합쳐서 부르는 용어다. 최근 정부는 도시형 생활주택의 건설을 장려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했다. 작은 집을 많이 지으면 1~2인 가구가 증가하는 인구사회학적 변화에 대응할 수 있고 전·월세 가격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길동 현대웰하임은 15층짜리와 6층짜리 건물 각 한 동에 모두 267가구를 짓는다. 가장 넓은 집은 전용면적이 18.5㎡(약 5.6평)이고, 가장 좁은 집은 13.8㎡(약 4.2평)에 불과하다. 현장에서 분양상담을 하던 이광수 저스트알 감사는 “발코니 확장을 하면 실내 공간이 3㎡가량 늘어난다”며 “확장 공사 비용은 회사에서 부담하므로 고객이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모델하우스 내부를 둘러봤다. 일자형 원룸으로 실내 공간이 좁긴 하지만 욕실·주방·침실 등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안내를 맡은 도우미는 “냉장고·드럼세탁기·에어컨·가스쿡탑·신발장·붙박이장 등 각종 가전제품과 가구를 풀옵션으로 분양가에 포함해 제공한다”며 “단지 안에 CCTV 등 첨단 보안 시스템을 설치해 혼자 사는 여성도 안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피스텔에 비해 관리비가 저렴하고 바닥난방이 되는 것도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욕실에 목욕통은 없지만 변기·샤워기·세면대가 설치됐다. 지하 주차장에는 총 76대의 자동차를 댈 수 있다. 주차공간은 대략 네 가구당 한 대꼴이다.

분양가는 가구당 8900만~1억3900만원이다. 공급면적(전용+주거공용 면적)을 기준으로 계산한 3.3㎡당 분양가는 남향이면서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비싸진다. 15층짜리 건물의 고층(10~15층) 남향 25.7㎡의 분양가는 3.3㎡당 1783만원으로 가장 비쌌다. 10~12일 사흘간 외환은행을 통해 분양신청을 받은 결과 1619명이 청약해 평균 6.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주택 유형별로는 6층 건물의 최고층 남향 27㎡(공급면적)짜리가 17대 1로 최고 경쟁률을 보였다. 입주는 2012년 6월 예정이다.

저스트알의 김천옥 이사는 “준공 후 임대 시세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5만원 정도를 기대한다”며 “예상 수익률은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연 6~7%로 은행 이자보다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주변 임대시장을 조사한 결과 오래된 건물에 지은 비슷한 면적의 원룸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65만원 수준이었다”며 “깔끔하고 안전한 새 건물에 풀옵션이란 점을 감안하면 임대수요는 충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도권 외에 대전·부산·제주도 활성화
원룸을 중심으로 도시형 생활주택의 건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전국에서 도시형 생활주택을 짓겠다고 인허가를 받은 물량은 9010가구에 달했다. 지난해 연간 인허가 물량(1580가구)의 다섯 배가 넘는 규모다. 특히 올 3분기에는 5102가구를 기록해 1분기(1575가구)의 세 배, 2분기(2333가구)의 두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올 1~9월 인허가 물량을 지역별로는 살펴보면 서울(3238가구)·인천(869가구)·경기(990가구)를 합친 수도권이 5097가구로 전체의 절반 이상(56.6%)을 차지했다. 대전(1091가구)과 부산(935가구)에서도 도시형 생활주택의 건설이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눈길을 끄는 지역은 제주도(563가구)다. 제주도 인구는 57만 명으로 광역시·도 중 가장 적지만 도시형 생활주택 인허가 물량으로는 아홉 개 도 중 경기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주택 유형별로는 원룸(전용면적 12~50㎡)이 7746가구로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86%)을 차지했다.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최근 공급되는 원룸의 상당 부분은 현대웰하임과 같은 전용면적 20㎡ 이하 소형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다세대 주택(85㎡ 이하)은 772가구, 주방·세탁실을 공동으로 쓰는 기숙사형(7~30㎡) 등 기타는 492가구로 집계됐다.

올 들어 소형 원룸 건설이 급증한 데는 ‘20㎡(6평)의 마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전용면적 20㎡ 이하의 집을 한 채 소유한 경우 다른 집의 분양을 신청할 때 무주택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0일 개정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의 제6조 3항의 5호에 따른 것이다. 그전에는 ‘아파트는 제외한다’는 단서 조항이 있었다. 이에 따라 소형 원룸이라도 소유권 등기를 하는 순간 다른 아파트를 분양받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따라서 무주택자들은 웬만하면 원룸을 분양받지 않으려 했고 건설업체들도 사업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원룸의 건설을 주저했다. 정부가 무주택 서민을 위해 도시형 생활주택을 활성화하겠다고 나섰지만 정작 서민들에게 외면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국토부가 단서 조항을 삭제하자 20㎡ 이하 원룸은 순식간에 인기 상품이 됐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법령의 개정이 시장에선 엄청난 수요 변화를 몰고 온 것이다.

국토부는 관련 건축규제도 잇따라 완화하고 있다. 지난해 말 도시형 생활주택의 주차장 설치 기준을 느슨하게 적용하기로 한 데 이어 올 7월부터 30가구 미만이면 주택건설사업 등록을 하지 않은 개인이라도 자유롭게 도시형 생활주택을 건설할 수 있게 했다. 기존에는 20가구 이상 짓기 위해선 일정 요건을 갖춰 주택건설사업 등록증을 받아야 사업 시행이 가능했다. 현재 국회에는 150가구 미만으로 규정한 도시형 생활주택의 건립 규모를 300가구 미만으로 확대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올라가 있다. 이 법이 통과될 경우 내년 이후 도시형 생활주택의 건설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투자자 28% “도시형 생활주택에 관심”
도시형 생활주택은 실수요자 외에 임대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최근 예비 투자자 12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원룸이나 도시형 생활주택에 투자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28.1%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급매물 아파트(24.8%) ▶토지(14.4%) ▶오피스텔(10%)의 순이었다. 이 회사의 김규정 본부장은 “도시형 생활주택을 찾는 투자자의 상당수는 서울 강남 지역에 사는 은퇴자나 은퇴예정자”라며 “임대 사업자로서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5가구 이상의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분양 현장에서 보는 관점도 비슷하다. 이광수 저스트알 감사는 “상담창구에서 고객들의 성향을 살펴봤더니 월세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며 “한 사람이 5가구 이상 청약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도시형 생활주택에 투자한다면 세금 문제에 유의해야 한다. 다주택 보유에 따른 양도소득세 중과나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다음 전용면적 60㎡ 이하의 소형 주택을 산다면 취득·등록세는 내지 않아도 된다. 임대 사업자가 공동주택을 2가구 이상 분양받아 임대한다면 재산세도 전용면적 40㎡ 이하는 면제, 40~60㎡는 50% 감면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양도세와 종부세는 우대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서울의 경우 임대사업자가 5가구 이상을 10년 이상 임대해야 양도세와 종부세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김종필 세무사는 “일반적으로는 임대 사업자로 등록하면 절세 효과가 있지만 예외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1주택자는 ‘3년 보유(서울 등 일부 지역은 2년 거주 요건 추가)’의 요건을 채우면 양도세가 없다”며 “하지만 1주택자가 임대 사업용이라도 추가로 집을 사면 다주택자가 되기 때문에 양도세 비과세에서 제외된다”고 강조했다. 이종화 세무사는 “현행 세법에는 도시형 생활주택이라고 특별히 우대하는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2주택자가 국세청이 정하는 기준시가 1억원 이하 집을 팔면 양도세를 무겁게 물리는 대신 일반 세율을 적용한다”며 “원룸 같은 소형 주택은 여기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원한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도시형 생활주택의 활성화는 국토부 소관이고 세제 개편은 기획재정부가 권한을 쥐고 있어 부처 간 협조가 원활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다주택자가 되면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기도 까다로워진다. 따라서 도시형 생활주택을 여러 채 분양받는다면 돈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할지 계획을 꼼꼼히 세워야 한다. 현재 주택투기지역(서울 강남·서초·송파구)에선 집이 여러 채 있더라도 주택대출은 1인 1건으로 제한된다. 이사 목적으로 다른 집을 사는 경우는 2년 안에 기존 집을 팔겠다고 약속하는 ‘처분조건부 대출’만 가능하다.

투기지역이 아닌 곳에서도 은행별로 자체 규정을 만들어 과도한 대출을 제한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투기지역이 아니라도 원칙적으로 1인 2건까지만 주택대출을 허용한다. 이 감사는 “임대 사업자로 등록하면 은행에서 주택대출 대신 사업자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며 “이 경우 금리가 일반 주택대출에 비해 조금 비싸질 수 있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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