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광저우] 오해 때문에 불탄 태극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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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일부 시민들이 자국의 태권도 선수 실격에 항의해 태극기를 불태우고 있다. [유투브 동영상 캡처]

아시안게임 태권도에서 대만 선수가 실격을 당한 사건을 두고 불똥이 한국으로 튀고 있다.

대만의 금메달 후보였던 양수쥔(25)은 17일 여자 49㎏급 예선 1회전에서 9-0으로 리드하던 중 종료 12초를 남기고 불법 장비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실격패를 당했다.

 당시 심판진은 양수쥔의 발뒤꿈치에 공인되지 않은 센서 패치 2개를 발견해 실격을 선언했다. 양수쥔은 실격패를 당한 뒤 경기장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면서 한 시간가량 항의했고, 이 장면이 대만 전역에 생중계됐다.

 양수쥔은 예쁘장한 얼굴과 뛰어난 태권도 실력으로 대만 내에서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스타다. 그래서 대만 국민의 분노는 더욱 극에 달하고 있다.

 일부 시민은 다음 날인 18일 대만 총통부로 몰려가 태극기를 찢고 불태우며 “한국인 심판위원이 이번 판정에 개입했다. 한국에 항의한다”고 외쳤다. 한국산 라면을 짓밟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대만 방송사는 판정 사건을 보도하면서 ‘소녀시대의 사과도 필요 없다’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다. 거리에는 ‘한국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건 식당이 등장했으며, 인터넷상에는 한국 상품 불매운동 카페도 만들어졌다.

 마잉주 총통도 나섰다. 그는 19일 “모든 검사를 다 받았는데도 실격패를 당한 것은 우리 국민이 받아들일 수 없다. 진상이 밝혀지기 전에는 어떤 비난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또 항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수쥔도 “1, 2차 장비 검사를 모두 통과했는데 무슨 소리냐”며 실격 판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 한국인 심판이 개입됐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면서 반한 감정으로 번지고 있다.

 이날 한국인 심판은 양수쥔의 1차 장비검사만 맡았다. 주심은 필리핀 사람이었다. 2차 장비검사는 주심이 맡기 때문에 한국인 심판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었다. 판정을 내린 심판진에도 한국 사람은 없었다.

 양진석 세계태권도연맹(WTF) 사무총장은 “경기 전 검사 때는 뒤꿈치 패치가 없었다. 하지만 경기 중 패치가 발견됐다. 의도적으로 속임수를 쓰기 위해 붙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양수쥔의 실격패를 놓고 일부 대만 인사는 같은 체급에서 중국의 유력한 금메달리스트 후보인 우징위가 우승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조작된 사건이라는 말도 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이를 정치 문제화하지 말라고 대만에 경고하고 나섰다. 공산당 기관지인 환구시보는 19일자에서 16면 전체를 할애해 ‘양 선수가 실격패하자 대만 정치인들이 중국과 한국이 짜고 대만에 패배를 안겼다고 공격하는 등 정치쟁점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종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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