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외규장각 도서 반환 찬반 대립 격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한국과 프랑스의 외규장각 도서(사진) 대여 합의에 대한 프랑스 내 여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대학 총장 등 일부 지식인은 한국으로의 인도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으나 국립도서관 관계자들은 자국 정부에 합의 취소를 요구했다. 특히 도서를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국립도서관(BNF) 사서들의 반발이 거세다.

 BNF 사서 11명은 18일(현지시간) 도서 대여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한국과 프랑스 정상이 문화재 상호 대여 방식을 주장해온 프랑스 문화부와 BNF의 의견을 무시한 무모한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결정은 국내법을 위반한 것이며, 이는 다른 나라들의 문화재 반환 요구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명 발표에는 1993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 외규장각 도서 한 권을 한국에 놓고 올 때 눈물을 흘리며 만류했던 인사도 참여했다.

 사서들이 반대하는 것은 외규장각 도서 대여 자체가 아니라 형식이다. 이들은 대여 조건으로 한국에 동급의 가치를 갖는 문화재를 프랑스에 대여할 것을 요구해왔다. 미테랑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이 ‘상호 대여의 원칙’에 합의했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다. 한국과 프랑스는 93년부터 10년 동안 상호 대여를 추진했으나 한국 측 문화재 전문가들의 반대 등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2일 한국 문화재의 대여 없이 5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방식으로 외규장각 도서 대여에 합의했다. 한편 장루 살즈만 파리 13대학 총장, 뱅상 베르제 파리 7대학 총장, 자르 랑 하원의원은 같은 날 일간지 르몽드에 양국 합의를 지지하는 공동 기고문을 실었다. 이들은 “사르코지 대통령은 한국에 대해 최고 주권자로서의 결단과 우의를 상징하는 행동을 몸소 취했다”고 평가했다.

 박흥신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는 “양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이룬 합의이기 때문에 BNF 측에서 반대한다 해도 정상적으로 도서들이 한국으로 인도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