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나라당 13년 … 양당제로 가는 길목이 되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한나라당이 어제 창당 13주년을 맞았다. 정당의 공과를 떠나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이 13년 지속된 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13년’이 뉴스가 될 만큼 한국의 정당은 생명이 짧다. 생멸(生滅)과 부침, 합당, 당명 변경이 회전목마처럼 어지럽게 진행돼 왔다. 이런 문화는 정치 안정과 국가의 발전에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는 2~3개 주요 정당이 정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대부분의 정당은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국민의 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런 정당 사이에서 정책과 시대상황에 따라 정권이 교체됨으로써 사회는 정(正)-반(反)-합(合)의 변화와 혁신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주요 정당에 대한 신뢰로 유권자는 어느 당이 집권해도 급격한 변화가 없을 것이란 예측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미국의 공화당은 156년, 민주당은 대략 180년이 됐다. 미국의 정당사에도 격변과 오욕과 선거 참패가 많다. 대표적으로 공화당은 닉슨의 워터게이트, 민주당은 클린턴의 르윈스키 스캔들이 있었다. 그래도 미국에선 당을 해체하거나 당명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한마디도 없었다. 미국의 정당은 대통령이나 상·하원 의원, 심지어 당원을 넘어 미 국민의 역사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자민당도 55년의 역사에서 수많은 추문이 있었다. 하지만 당이 사라지거나 당명이 없어지지 않았다.

 반면 한국에선 격변과 지도자 사망, 당권 분열에다 당권자의 욕심으로 정당과 당명이 단명(短命)했다. 이승만의 보수여당 자유당은 반(反)독재 의거에 9년 만에 무너졌다. 5·16 쿠데타 세력이 만든 공화당은 박정희의 피살로 17년 만에 역사에서 사라졌다. 공화당에 맞섰던 신민당은 80년 신군부 집권으로 13년 만에 문을 닫았다. 신민당은 85년 잠시 부활했으나 김영삼·김대중의 대권 분열로 결국 수명을 늘려가지 못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집권자는 아파트 리모델링을 하듯 당명을 바꾸거나 당을 쪼갰다. 김영삼 대통령은 신한국당, 김대중 대통령은 새정치국민회의,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선보였다. 그러나 그 이름들도 수년 안에 바뀌거나 사라졌다.

 이런 풍토에서 13년의 한나라당은 중요한 역사적 책무를 안고 있다. 당은 보수(또는 중도보수) 주류 정당으로서 한국 정치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며 생존해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어떠한 충격도 버텨낼 수 있는 민주적·보편적·대중적 맷집을 갖춰야 한다. 집권자의 ‘신당 창당’ 욕심, ‘차떼기’ 같은 거대한 스캔들, 이명박-박근혜 갈등 같은 분열 요인, 선거 참패와 정권 상실의 충격을 경계해야 한다.

 정책의 실패나 지도자 부족, 유권자의 신뢰 상실 등으로 정당은 언제든지 정권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당명과 당혼(黨魂)을 지키면서 언제든지 제자리로 돌아와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복원력이다. 87년 후 이 사설란에 ‘한나라당 100주년’ 축하의 글이 실리길 진심으로 바란다. 민주당이나 다른 성숙한 정당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