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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기자의 오토 살롱] 101년 달려온 아우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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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독일의 아우디(Audi)는 1970년대까지 유럽의 대중차였다. 2000년 이후 벤츠·BMW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됐지만 101년 아우디 역사는 여러 번의 합병과 좌절을 맞본 시련의 연속이었다.

 아우디의 상징인 4개의 링은 처음 화합을 의미했다. 1932년 독일 삭소니 지방의 자동차 회사였던 아우디·반더러·호르히·데카베가 아우토 유니언으로 합병했다. 당시 고리처럼 연결된 링은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상징이었다. 요즘에는 결혼 반지에 비유된다. 아우디는 세 번의 이혼을 감당할 만한 부자나 탈 수 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아우디 회장을 역임한 페르디난트 피에히 현 폴크스바겐 이사회 의장은 세 번 이혼했다.

 합병된 아우디는 내분을 겪다 58년 다임러-벤츠로 넘어간다. 벤츠에서도 정체성을 찾지 못해 64년 폴크스바겐에 인수된다. 성공의 출발점이다.

 80년 아우디는 제네바모터쇼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4륜 구동 콰트로를 내놓는다. 당시 고급차인 벤츠·BMW는 승차감이 좋은 후륜구동이었다. 전륜구동인 아우디는 4륜 구동으로 한계를 극복하면서 고급차 대열에 발을 들여놓는다. 콰트로는 이후 WRC 등 모터스포츠에서 잇따라 우승하면서 탁월한 주행성능을 뽐냈다.

 아우디는 70년대에 미국에서 뼈아픈 실패를 맞봤다. 한 방송사에서 ‘아우디는 급발진 위험이 있다’는 검증 안 된 보도를 내보냈다. 판매는 급감했고 결국 철수로 이어졌다. 그러나 80년대 콰트로를 앞세워 다시 미국에 진출했다.

 전화위복이랄까. 대신 누구보다도 먼저 중국에 입성했다. 벤츠·BMW·렉서스가 미국에 집중하는 동안 아우디는 90년대 이후 중국에서 고급차 1위를 질주했다. 이어 예상하지 못한 금융위기가 아우디에 또 한번의 기회가 됐다. 2009년 벤츠·BMW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미국 의존도가 낮은 아우디는 처음으로 연간 100만 대 판매를 달성하면서 흑자를 이어갔다.

 2015년 150만 대 판매로 프리미엄 브랜드 세계 1위를 목표로 정한 아우디는 올 하반기 새로운 카드를 빼들었다. 100% 알루미늄 차체로 만든 대형 세단 뉴 A8(사진)의 출시다. 지금까지 A8는 경쟁 모델인 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에 밀려 존재감마저 위태로웠다. 판매량도 이들의 절반이 안 돼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차’라는 평도 나왔다. 하지만 아우디는 대형 시장에서의 성공 없이 세계 1위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A8를 승부수로 던졌다.

한국에서 A8의 출발은 순조롭다. G20 정상회의에 나온 의전차량 34대가 1억5000만원대 고가임에도 단숨에 동이 났다. A8가 아우디의 성공 역사에 방점을 찍을지 궁금해진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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