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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 기 꺾는 ‘특허 문턱’ 낮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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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제임스 다이슨
영국 다이슨 회장

토머스 에디슨은 “어떤 사람이 유용한 것을 만드는 데 성공하자마자 다른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자기가 몇 년 전에 이미 발명한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모방은 최고의 아부다’라는 잘 알려진 격언이 있지만, 엔지니어들의 세계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모방은 최고의 게으름이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특허의 개념이 생겨난 지 500년이 넘었다.

 창의력을 발휘한 사람이 이득을 봐야 한다는 특허의 개념은 베네치아 공화국이 처음으로 발명품을 보호하기 위해 ‘특권’을 부여한 1421년에 등장했다. 15세기 말 베네치아의 번영이 절정에 달한 데는 특허로 인한 산업 발전이 큰 힘이 됐다.

 특허 소유자는 최대 20년 동안 특허받은 상품·부품을 다른 사람이 만들거나 파는 것을 막을 권리가 있다. 고무를 황과 결합해 딱딱하게 만드는 경화고무를 발명한 찰스 굿이어가 발명 즉시 특허를 신청했더라면, 다른 이들의 모방품을 막느라 남은 인생을 보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굿이어는 사망할 때 오늘날 가치로 400만 파운드의 빚이 있었다. 경화고무가 잠수복·자동차 타이어·수술 장갑 등 수많은 분야에서 쓰이는 것을 생각하면 슬픈 일이다.

 특허 출원 비용을 지불하기만 하면, 특허청의 흑기사가 나타나 등록된 특허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오해다. 몇몇 특허 위반 사례는 유명하다. 토머스 에디슨은 전구 발명과 관련해 경쟁자인 조지 웨스팅하우스와 수년간 법정 다툼을 벌였다.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특허는 미국에서만 유효했다. 그래서 독일 기업 지멘스&할스크는 1877년 유럽에서 자신들의 전화를 특허로 낼 수 있었다.

 영국의 특허 출원 과정은 오래 걸리는 데다 비용이 많이 들고, 종종 좌절감을 안겨준다. 필자가 처음 영국 특허청을 상대로 특허를 보호하고 갱신하는 싸움을 시작했을 때 그 비용 때문에 거의 파산할 뻔했다. 심각한 재정 부담에도 불구하고 특허를 내는 일은 분명 가치가 있었다. 1999년 우리는 다이슨 듀얼 사이클론의 특허를 침해한 혐의로 후버 유럽을 고발했다. 우리는 그 사건에서 승소했고, 그 결과 후버 유럽은 자사 트리플 보텍스 기계를 판매할 수 없었다.

 여전히 특허 갱신 시스템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인권 유럽 재판소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특허 갱신 비용이 너무 비싸 개인이 재정 지원 없이 자신의 기술을 보호받기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불행히도 필자의 신청은 기각됐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가 특허를 좀 더 저작권처럼 만들어야 된다고 믿는다. 예술가의 노래나 책에 대한 저작권을 보면, 비용이 무료고 저자의 사후 70년간 지속된다.

 미국과 일본은 진정으로 혁신을 권장하는 나라의 좋은 예인데, 특허 신청 수가 이 사실을 보여준다. 2005년 기준으로 미국에선 90만 개 이상의 특허 출원이 접수됐고, 일본이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비해 영국은 일본의 10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 두 나라가 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여러 중소기업으로 유명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특허가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법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점차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특허 출원에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엔지니어의 값지고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보호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 필자는 영국과 전 세계의 엔지니어 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현행 법규를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하려 한다.

재능 있는 엔지니어들을 육성해 그들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우리 생활을 더 윤택하고 편안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허 출원과 갱신 비용이 비싸서 그들이 미처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제임스 다이슨 영국 다이슨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