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얀 맥 잇는 지휘자 ‘뼛속까지 오스트리아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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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오스트리아 정체성이 강한 프란츠 벨저-뫼스트. 20대에 덧붙인 가운데 성 ‘벨저(Welser)’를 오스트리아의 도시 ‘벨스(wels)’에서 땄다는 추측도 있다. 그는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르는 소문이다. 어머니의 성일 뿐이다. 한 번 생긴 소문이 잘 없어지지 않는다”며 웃었다. [빈체로 제공]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89)을 기억한다면, 그 밑에 이 이름을 적어놓는 게 좋겠다. 프란츠 벨저-뫼스트(50)다. 올해 오스트리아 빈의 ‘주권’을 되찾아온 지휘자다. 오스트리아의 자존심인 빈 국립 오페라는 카라얀이 사임한 1964년 이후 클라우디오 아바도(이탈리아), 오자와 세이지(일본) 등 ‘용병’ 지휘자가 이끌었다. 46년 만에 이 지휘봉을 다시 가져온 이가 벨저-뫼스트다.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태어난 그는 “나는 뼛속까지 오스트리아인이다. 내게 독일권 음악은 자연스러운 모국어와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전화 인터뷰에서다. 세계적 지휘자로 부상 중인 그의 음악세계를 ‘네 도시 이야기’로 풀었다.

◆린츠 vs 빈=벨저-뫼스트는 오스트리아 린츠 태생이다. 근·현대 교향곡의 기틀을 잡은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1824~96)과 고향이 같다. “어려서부터 나는 브루크너를 운명처럼 생각했다. 그가 하려는 말을 잘 이해할 수 있다. 20대에 처음으로 그의 교향곡 5번을 지휘했고, 현재까지 교향곡을 모두(10곡) 연주했다.” 자신의 ‘오스트리아 정통성’을 주장하는 말이다.

 린츠가 지휘자에게 음악적 영감을 제공했다면, 빈은 그에게 제2의 도약을 선사한 도시다. 빈 국립 오페라를 맡은 데 이어 2011년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 지휘자로 선정됐다.

이 음악회는 주빈 메타·다니엘 바렌보임·로린 마젤 등 일류 지휘자들을 매년 지휘대에 바꿔가며 세운다. 지휘자들에게는 영예다. 벨저-뫼스트는 여섯 번째 오스트리아 지휘자. “세계에서 이런 도시는 찾아보기 힘들다. 모든 것이 음악적이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색채로 가득한 신년 음악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 vs 클리블랜드=벨저-뫼스트는 1990년 런던필하모닉 상임지휘를 시작했다. 의욕적인 무대와 녹음을 선보였지만, 평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92년 뉴욕타임스는 “프란츠 벨저-뫼스트(Franz Welser-Mst)가 ‘솔직히 최악보다 더 못한(Frankly Worse than Most)’으로 불리고 있다”고 썼다. 그의 이름 약자를 비꼰 비평이었다. 런던필과의 동거는 6년 만에 끝났다.

 그는 2002년 미국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로 자리를 옮겨 현재까지 함께하고 있다. 이적 후에는 날개를 단 듯 승승장구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실력 덕분이다.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작품을 연주해도, 첫 리허설에서 완벽한 소리를 낸다. 잘 만들어놓은 기계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의 밀월이 오래갈 것임을 예고했다.

 벨저-뫼스트는 18년 만의 내한 공연에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함께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들려준다. 자신의 핵심을 이루는 두 도시의 정수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음악칼럼니스트 이영진씨는 “벨저-뫼스트의 브루크너는 선배들의 전통을 단순히 모방하지 않는 현대성이 돋보인다. 중후함을 노려 연주 속도를 늦추고 음폭만 확장시키다 곡조가 축 늘어지게 되는 해석을 경계하는 현대적 디자인이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20일 오후 7시30분 경기도 고양 아람누리, 2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599-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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