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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불균형 핵심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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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한국 경제학자가 외국에 나가서 한국 경제를 아프게 비판한다면 이런저런 뒷담화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특히 민감한 외교 문제에서 자국이 아닌 상대국 편을 든다면, 이를테면 일본에 가서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주장을 편다면 아마 귀국길이 온전치 않을 것이다.

저명한 미국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가 8~9일 서울대에서 열린 강연회와 국제회의에 참석해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이 들으면 펄쩍 뛸 만한 얘기를 쏟아냈다. 물론 그가 ‘독도는 일본땅’ 같은 억지 주장을 편 건 아니다. 다양한 통계수치를 제시하며 시종일관 논리적으로 견해를 밝혔다.

 삭스 교수는 9일 서울대 경영대 SK관에서 열린 ‘통화전쟁의 진행과 세계경제 회복’ 국제회의에서 “글로벌 불균형의 핵심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했다. 환율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말이다. 그는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미국 경상수지 적자의 원인은 아니다”며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세계총생산(GWP)의 0.6%에 불과하며, 이는 미국에 영향을 줄 만큼 크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위안화를 절상해도 글로벌 불균형이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삭스 교수는 자신의 가설임을 전제로 “위안화를 20% 절상해도 미국 경상수지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적다”고 말했다. 오히려 위안화 환율을 상당 폭 절상하면 단기적으로 중국의 실업이 크게 늘고, 이는 다른 나라에까지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경상수지 불균형은 미국의 재정정책과 가계의 저축률 탓에 온 것이지, 중국의 위안화나 아시아 국가의 재정정책과는 관계가 없다고 했다.

 G20의 화두인 정책 공조와 관련해서도 색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한 나라의 정책이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파급효과는 의외로 크지 않으니, 각국 자신에게 가장 좋은 정책을 펴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또 하루 전인 8일 삭스 교수는 서울대 강연에서 “현재 미국 경제의 위기는 일반적인 경기순환 차원을 벗어난 것으로 보이며,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뿌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 30년간 미국 정부가 취해온 감세 정책과 규제 완화, 통화팽창 정책 등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단기적 처방 대신 근원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과 인도·브라질 등 신흥국들이 무서운 속도로 경제발전을 하며 선진국과 기술격차를 줄이고 있다”며 국제경제질서의 재편을 미국과 유럽 경제위기의 첫째 원인으로 꼽았다. 또 비싼 선거비용 때문에 정치인들이 기업과 부자들에게 포섭되면서 소득세 감면과 사회보장 축소, 금융규제 완화와 같이 잘못된 정책을 남발했고, 그 결과 소득격차가 극심하게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1980년대 이후 추진해온 부자 감세의 허구성도 문제 삼았다. 예컨대 레이건 대통령이 부자들에게 소득세를 감면해 주면서 감세로 경제가 성장할 테니 재정적자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얘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에선 지난 30년간 세금 납부에 관한 사회적 윤리의식이 사라졌다고 했다.

삭스 교수는 “미국은 부유층 세금을 올리고 교육과 공공 인프라, 지속 가능한 에너지, 기술 개발 등에 더 많은 정부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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