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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범람하는 '한류(韓流) 짝퉁' 막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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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윌리엄 번스타인은 저서 '부의 탄생'에서 인류는 11세기 이래 거의 제로 상태의 경제성장을 해오다 19세기부터 비약적 고속성장을 했다며 그 요인으로 '안전한 재산권' '과학적 합리주의' '활력있는 자본시장' '수송통신 발달'을 꼽았다. 이 중 재산권 보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최근 프랑스의 유명한 향수 회사가 자사 향수의 향기를 모방한 다른 향수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침해금지 소송에서 프랑스 법원은 향수의 향기도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미국 의회는 1998년 저작권 보호기간을 20년 추가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이 없었다면 31년에 만들어진 디즈니만화의 캐릭터인 '곰돌이 푸'는 종래의 보호기간 75년이 만료되는 내년부터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중자산이 될 수 있었다. 임종을 앞둔 곰돌이의 생명을 연장시킨 것은 월트디즈니사의 로비 덕이었지만, 이는 미국 경제를 살리는 길이기도 했다.

몇 해 전 네덜란드의 어떤 화훼 기업은 국내 종묘사를 상대로 자사의 특허받은 장미 품종에 대한 판매금지와 함께 거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어왔었다. 이처럼 선진국들은 자국 산업의 보호를 위해 저작권 보호 대상을 넓히거나 보호기간을 연장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지난 몇 해 동안 우리는 한류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를 체험하고 있다. 한류 지속을 위해 주무부처 장관이 한류 스타들과 함께 방송토론에 나오는 등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문화를 산업화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해서는 이제 누구나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각론에 있어서는 여전히 문제가 많다. 욘사마.권사마와 같은 사마들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발굴하는 것 못지않게 이런 문화 아이콘을 산업으로 연결시키는 제도적 장치 마련도 중요하다.

겨울연가.대장금.올인과 같은 드라마의 판권이 이웃나라에 수십억원에 팔리는 것만으로 만족할 일이 아니다. 드라마로 인해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산업들, 예컨대 라이선스산업, 영화 및 온라인게임화산업, 사진집 등 출판산업, 광고산업, 기타 관광산업 등에서 더 많은 활로를 찾아줘야 한다. 영화 '스타워즈'를 제작한 루커스필름이 캔 표면에 등장인물의 사진을 싣도록 허락해 주고 펩시콜라로부터 받은 라이선스료가 영화판권 수입 못지않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 좋은 자원을 얼마나 사장하고 있는지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한 권에 10만원 가까운 사진집을 허가 없이 발간한 업자에 대해 현행법대로라면 초상권 침해로 인한 정신적 위자료밖에 받을 수 없다. 문제는 징벌배상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 판례에 따르면 그것이 기껏해야 수백, 수천만원에 그친다는 점이다. 그러나 초상권의 재산권적 측면을 보호하는 퍼블리시티권을 통하게 되면 침해자가 그로 인해 벌어들인 이익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어 매우 강력한 재산권의 보호가 된다.

최근 들어 우리 법원은 저작권법상의 미비를 들어 유명인들이 자신의 초상, 성명을 재산권화할 수 있는 권리인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놓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처럼 법 제정을 은근히 유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정작 작금에 진행되고 있는 저작권법 개정 논의에선 퍼블리시티권 조항의 신설이 아예 거론조차 안 되고 있다. 지식정보화 사회가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에게 가져다준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미 중국을 포함한 한류 소비국가들에서 우리의 한류를 이용한 짝퉁이 난무하고 있다고 한다. 제 나라에서조차 재산권으로 보호해 주지 않는 마당에 이들 국가에 대해 우리의 한류산업을 법으로 보호해 달라고 요구할 명분은 누가 봐도 약하다.

남형두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저작권심의조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