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저 스타만 없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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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이 대중문화의 전위부대 역할을 자임하는 동안, 그 이면에선 또 하나의 움직임이 태동했다. 이른바 '안티 팬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스타 혹은 TV 프로그램에 대해선 힘을 합쳐 '퇴출'까지 선언해 버릴 수 있다고 믿는, 훨씬 더 적극적인 생각을 가진 집단이다.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왕꽃 선녀님'의 안티 팬클럽은 조직적인 행동력을 선보인 좋은 예다. 드라마에 입양 제도를 비하하는 내용의 대사가 자주 등장하자 입양 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안티 팬클럽이 결성됐다. 온라인에서 의견을 주고받던 이들은 결국 서울 여의도에서 오프라인 집회까지 벌인 끝에 방송국 측의 사과 방송을 이끌어냈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시청자 주권운동의 작은 승리였던 셈이다. 그러나 모든 안티 팬덤의 활동이 이렇게 건전하게 진행되지만은 않는다. 지난달 영화배우 이은주씨가 세상을 뜨자 여러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는 괴상한 글이 떠다녔다.

"동방신기를 저세상으로 보낼 수 있는 기회입니다…(중략)…이은주라는 삼류 배우가 죽어 우리 오빠들이 (신문이나 TV에) 안 나온다고 추모 사이트에 (불평을) 뿌려 주세요."

인기 댄스그룹 '동방신기' 팬으로 위장, 이은주씨를 욕하는 글을 온라인 공간에 퍼뜨리라는 행동강령이었다. 두 말 할 필요없이 이씨를 측은하게 여기는 국민 정서를 역이용, 동방신기를 욕보이려는 의도다. 이 글은 동방신기를 "다섯 마리의 쓰레기"라고 부르는 한 안티 사이트 회원들에게 단체로 발송된 e-메일로 밝혀졌다. 몰래 진행하려던 '거사'가 밝혀지자 이 사이트는 자진 폐쇄했다. 안티 팬덤의 그늘을 보여준 입맛 씁쓸한 사례.

이처럼 일부 몰지각한 안티 팬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근거 없는 악성 소문을 퍼뜨리거나 맹목적인 비방을 일삼기도 한다. 이런 안티 팬들은 대부분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이런 안티 팬들의 경우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라이벌이라는 '유치한' 이유만으로 다른 스타를 미워하기도 한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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