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0개국 고교생들이 펼친 치열한 논리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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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0개국 고교생들이 경기도 시흥 대교 HRD 센터 강당에서 ‘환경-주거 문화’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강정현 기자]

지난달 28일 오후 경기도 시흥 대교 HRD 센터 강당. 세계 20개국에서 모인 고교생 60여 명의 토론이 한창이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청소년 국제토론대회인 ‘월드스쿨인터내셔널포럼(월드스쿨)’ 자리다.

이날 20명으로 이뤄진 소그룹은 ‘도시화는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라는 주제로 영어 찬반토론을 벌였다. 루마니아에서 온 댄 포페추(17)는 “경북 안동 전통가옥은 관광사업으로 농민들에게 돈 벌이도 되고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일 출신의 사이먼 헤쿠이스(16)는 “도시에서도 관광이 발달할 수 있다”며 “스페인 도시는 매력적인 문화상품으로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은다”고 반박했다. 이번에는 일본인 히로미 나카오(17)가 “칠레에서 지진은 발달된 건축 기술 덕분에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만 아이티는 그렇지 못했다”며 “도시의 삶이 오히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거들었다. 양정고 2학년 심성보(18)군은 “다양한 국가의 학생이 구체적인 논거로 반박해 토론에 활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1997년부터 매년 열리는 대회의 올해 토론 주제는 ‘환경-주거 문화’. 이탈리아에서 온 코넬라 윈젠버그(50) 교사는 “서울의 고층 건물과 안동의 전통가옥을 비교해보고 학생들이 토론 주제를 현장에서 접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지난달 18일부터 한국을 방문한 학생들은 경복궁·안동 하회마을 등을 탐방했다. 토론대회(27~29일) 첫날 학생들은 엄격한 토론 규칙을 배웠다. 대회 규칙은 주제를 놓고 찬성과 반대 팀으로 나눈 다음 주장(Assertion)·이유(Reasoning)·증거(Evidence)로 이뤄진 ‘ARE 문장 구조’를 바탕으로 토론하는 것이다. 어기면 감점돼 토론에 질 수 있다.

학생들은 토론의 승패를 판단하기도 한다. 다른 팀 토론을 듣고 사회·경제·환경적인 면을 구분하여 평가해야 한다. 4년간 월드스쿨에서 토론 수업을 진행해온 마리안 로젠셜(37)은 “토론은 두뇌 게임”이라며 “사적인 관점을 배제하고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증거를 찾다 보면 논리력을 갖춘다”고 말했다.

월드스쿨을 시작한 일본 도쿄 간토국제고교 관계자인 마쓰다이라 마사키는 “여러 나라 사람들 앞에서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토론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월드스쿨에서 경험한 토론은 학생들의 진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지난해 참가생인 고3학생 강전욱(19)군은 “일방적인 수업보다 토론을 통해서 얻는 것이 많았다”며 “대학도 토론 수업을 위주로 진행되는 학과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서울 양정고 김창동 교장은 “매년 3명의 학생을 월드스쿨에 보내면서 학생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봐왔다”며 “이번 대회에서는 우리가 외국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글=김민상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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