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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문창극 칼럼

역사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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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 이어진다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나는 때가 없다. 6·25가 터진 지 60년이 되었다. 이제 6·25는 분명히 역사가 되어 전쟁기념관 안에서 유물로 만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중국 시진핑 국가부주석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기 때문에 중국이 참전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북한의 남침은 공인된 역사적 사실”이라고 반박했고, 중국은 다시 그의 주장이 “중국 정부의 정론”이라고 재확인했다. 이게 웬일인가? 6·25는 박물관의 미라가 아니었다. 아직 살아서 동북아를 휘젓고 다니는 것이다. 이번 공방은 한·중 간의 말싸움이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를 짐작하게 하는 단초가 된다. 이런 생각에서 연설 전문을 구해 보았다.

 시 부주석은 한국전 원인을 “조선의 내전이 발발한 이후 미 트루먼 정부는 제멋대로 파병을 결정해 전면전을 일으켰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전쟁을 좌우 간의 내전으로 보고 여기에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자”가 가세했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 진보 학자들이 한국전의 기원을 해방공간의 좌우 대결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전면전을 일으킨 쪽이 북쪽이고, 침략자 역시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쪽이라는 사실은 이미 역사 문서들로 증명되었다. 6·25는 미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아니라 소련 공산주의의 팽창정책의 일환이었다. 개전 초 전투력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한국군은 소총과 박격포뿐이었는데 북한군은 소련제 탱크를 몰고 내려왔다.

 시 부주석은 “중국 정부의 수차례 경고를 무시하고 38선을 넘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쳐들어 왔다”는 것을 참전 이유로 들었다. 이 말은 한국의 통일 문제와 결부된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그때 유엔군이 38선을 넘지 않았다면 참전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한반도가 분단되어 있는 것이 중국 국익에 부합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조선반도와 중국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중(中)·조(朝) 군이 전선을 38선 부근으로 안정시키는데…”라는 등의 구절을 연결시켜 볼 때 중국의 목적은 38선의 유지였다. 앞으로 만일 북한이 붕괴된다면 중국의 이런 입장은 여전히 유효한가? 그렇다면 북한이 붕괴돼도 우리의 통일은 요원한 것이다. 중국은 결코 한국과 국경을 맞대지 않겠다는 말이며, 북한에 친중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주한미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주한미군 없는 한국의 통일은 받아들일까? 지금 같은 동북아 구도라면 주한미군이 없는 통일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속국으로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는 38선에 다다르자 주춤거렸다. 유엔의 참전 목적이 침략을 격퇴하는 것이기 때문에 38선 위로 올라가는 것이 타당하냐는 논란이 일어났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은 38선 돌파를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이 잘못한 것일까? 통일의 기회를 눈앞에 두고 다시 분단된 상태로 전쟁을 끝내자? 그때까지의 희생은 누가 책임지겠는가? 그렇게 끝낼 수는 없는 것이었다. 시 부주석은 참전 결정을 내린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등 당시 중국 지도자들을 찬양했다. “선견지명을 가지고 단호하게 항미원조를 결정,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역사적 사명에 용감하게 응했다”면서 “불멸의 역사적 업적을 잊지 않고 있다”고 했다. 참전 군인들이 모인 자리이니 그들의 입장에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가? 휴전을 원하던 미국에 이승만 대통령은 맨주먹으로라도 통일을 하겠다고 했다. 전쟁에 지친 미국은 서둘러 한국을 떠나려 했다. 그런 그들을 한·미방위조약으로 붙잡아 나라를 수호한 그에게 우리는 감사한 적이 있는가? 역대 어느 대통령이 이승만의 이러한 애국심을 기린 적이 있는가? 우리는 6·25를 왜곡한다고 중국을 비난하기에 앞서 과연 우리 역사를 지켜가고 있는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고 말한다. 패자는 사라지고 승자만이 남아 역사를 쓰기 때문이다. 6·25가 북·중의 승리로 끝났다고 가정해 보자. 6·25는 중국이 주장하는 식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아마 학자들은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좌우 내전에서 좌파가 승리했다고 칭송했을 것이다. 그것이 6·25의 정사가 되는 것이다. 지금 한·중이 팽팽히 맞서는 것은 역사의 승자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역사가 어떻게 기술되기를 바라는가? 진실은 진실대로 기록되어야 한다. 그러나 역사는 학문의 세계가 아니다. 사실을 도적맞지 않으려면, 사실을 사실대로 지키고자 한다면 현실의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6·25는 끝났지만 역사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한 가지 다행한 점이 있다면 그가 “조선반도의 평화·안정을 지키고 대화와 타협 등 외교 수단으로 갈등을 해소해 조선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는 중국이 반드시 이 원칙을 지켜주기 바란다. 또한 북한에도 이 점을 설득해 주어야 할 것이다.

문창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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