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토크 13] 럭셔리 제국의 나폴레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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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경영계의 화두는 전문화, 세분화였다. 지금은 다시 하나로 수렴되고 있다. 그래서 생겨난 용어가 융합 또는 통섭이다. 영어로는 convergence다. 세분화된 IT 기술도 이젠 다시 하나로 통합되고 있다.

좀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명품업계도 한 우산 아래로 모여들고 있다. 스위스의 시계그룹 스와치는 초고가인 브레게와 블랑팡을 비롯해 오메가, 글라슈테,티쏘, 론진,라도 등 18개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그 수단은 M&A였다.

이 시대, 단 하나의 럭셔리 제국을 꼽는다면 두말 할 나위도 없이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LVMH)다. 제국의 황제는 베르나르 아르노(61)다. 루이뷔통을 기함으로 앞세운 그는 현재 펜디, 셀린느, 크리스찬 디올, 겐조, 지방시, 겔랑 등 60여 개 브랜드를 거느린 명품업계 최고의 파워맨이다.

그의 힘을 보여준 일이 올 4월 한국에서 벌어졌다. 4월1일 오전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녀 이부진 신라호텔 전무가 인천공항에 나타났다. 다름 아닌 아르노 회장을 맞기 위해서였다. 이채욱 인천공항공사 사장도 입국장에 나와 그를 영접하고 여객터미널 3층 출국장의 면세점으로 안내했다. 같은 날 오후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에서는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그를 맞아들였고,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 백화점 10층 면세점으로 직접 안내했다. 그 뒤 신세계백화점의 정용진 부회장도 아르노 회장을 만났다. 1박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럭셔리 매장을 운영하는 국내 유통업계의 거물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아르노 회장의 방문 목적은 인천공항에 루이뷔통 매장을 내는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껏 루이뷔통은 공항 면세점은 사양해 왔다. 사람이 붐비는 공항은 품위가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다른 브랜드 매출이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에서 flagship인 루이뷔통을 더욱 파워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인천공항 면세점을 검토하게 된 것이었다. 싸움은 자연 삼성 대 롯데로 이어졌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신라와 롯데는 연 매출이 각각 4600억원 안팎으로 난형난제다. 이런 상황에서 루이뷔통을 유치하는 쪽이 치고 나갈 것은 뻔하니 양보할 수 없는 한판이 벌어진 것이다. 아직까지 이 문제는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엄밀히 말해 LVMH가 공항 면세점에 입점할지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어쨌든 힘은 가지고 봐야 한다. 삼성과 롯데가 서로 물건을 팔아주겠다고 치열하게 접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르노 회장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말 그대로 브랜드, LVMH 또는 루이뷔통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60여개 유명 브랜드를 휘하에 거느리게 됐다. '럭셔리 업계의 나폴레옹'이란 별명을 얻을 만하다.

그의 최대 특기는 '쇼핑'이다.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유명 브랜드를 사는 것이다. 그 결과 그의 현재 재산은 275억 달러에 이른다. 미국 포브스의 글로벌 부자 순위 7위다. 패션계에선 단연 세계 최고 갑부며, 프랑스에서도 그를 넘어서는 사람은 없다.

프랑스 북부 루베 지방에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발군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프랑스 최고 명문인 에콜 폴리테크닉에 조기 진학하고 ENA(국립행정학교)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프랑스 정계도 이 코스를 밟은 사람들이 쥐고 있다. 현재 대통령인 니콜라 사르코지 역시 학창시절 그의 친구였다. 졸업 후 그는 가족 비즈니스였던 건축•부동산 회사인 ‘페레-사비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81년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자 그는 미국 플로리다로 떠났다. 팜비치에서 3년간 콘도미니엄을 개발하며 상당한 돈을 모았다. 사회주의 정부가 경제정책 방향을 보수적으로 바꾸자 그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

미국에서 번 돈으로 그는 파산 직전의 헤네시 코냑을 인수했다. 그의 첫 번째 회사 모에 헤네시가 탄생한 것이다. 이후 브라질, 호주,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포도밭을 사들이면서 명품 와인 만들기에 몰두했다. 그 결과 현재 모에샹동, 동 페리뇽, KRUG, 헤네시 등와인•주류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패션•잡화 쪽엔 루이뷔통을 비롯해 펜디, 세린느, 크리스찬 디올, 겐조, 지방시, 로에베 등이 다 그의 수하에 있다. 향수와 화장품으로는 디올, 겔랑, 베네핏, 프레시가 있다. 시계•보석에는 태그호이어, 제니스, 쇼메 등이 화려한 빛을 발한다. 면세점 DFS갤러리아와 화장품 전문점 세포라, 마이애미 크루즈라인도 LVMH의 지붕 아래 있다.

심상복 기자(포브스코리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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