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대 남치형 교수 태국 리포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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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태국 바둑은 1993년 불과 20명의 팬이 모여 바둑클럽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지금 태국은 바둑팬 100만 명을 자랑하는 나라로 변했다.

현재 65개의 초등학교에서 4000여 명의 학생이 매주 바둑을 특기 교육의 하나로 배우고 있고 약 30개 대학에서 바둑을 교양과목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약 50개 기업에서 바둑 유단자에게 취업 특혜를 주고 있다.

태국의 바둑교육은 매우 체계적이다. 바둑협회가 선발한 강사들이 협회에서 제작한 교재로 학생을 가르치고 이들은 일정한 수입을 얻는다. 학생들의 참여를 고취시키기 위해 매년 바둑 캠프, 청소년 대회 등이 열리고 재능이 있는 학생들은 방과 후에 특별교육을 받는다.

현재 명지대 바둑학과에 유학하고 있는 아피뎃 지라소핀(아마 5단) 역시 학교에서 처음 바둑을 접했고 유단자가 되면서 초등학교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청소년 바둑대회는 98년 200명이 참가하더니 지금은 1000~2000명이 모이는 큰 대회로 발전했다. 국제 행사인 태국 대학생 바둑대회는 96년 27개 대학으로 시작해 지금은 전 세계 50여 개 대학에서 200여 명이 참가하고 있다. 유단자도 150명 정도로 늘어났다. 태국 바둑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중심에 태국 최고의 기업인 CP그룹의 부회장이자 계열사 세븐 일레븐의 회장인 코작 차이라스미작이 있다. 태국에서 가장 성공한 전문경영인인 그는 연간 수십 회의 초청 강연에서 "미래 태국을 이끌어갈 젊은이들은 훌륭한 기업인이 되기 위해 바둑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CP그룹은 물론 다른 기업체 대표들도 설득해 '유단자 취업 특혜'를 넓혀가고 있다.

코작은 자신의 세 자녀를 모두 초단 이상의 실력자로 만들었고 태국에서 열리는 모든 바둑대회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아마 5단의 실력으로 수차례 세계아마선수권대회 태국 대표로 출전했고 세계 화교바둑연합회 대표도 맡고 있는 그는 대학교 때 처음 바둑을 배운 이후 바둑의 열렬한 전도사가 되었다.

바둑은 일년 내내 덥기만 한 태국 사람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해주고 다른 보드게임과 달리 상생의 철학을 갖고 있기에 바둑보다 더 좋은 세상 공부는 없다는 것이 코작의 소신이다. 빈부 차이가 큰 태국에선 주로 사립학교의 부유층 자녀들이 바둑을 배우고 있다. 이바람에 바둑을 두는 젊은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명문대를 졸업해 사회의 리더로 성장해가고 있는 것도 태국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남치형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프로 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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