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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 씐 고령화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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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낮 지하철 1호선 객실은 ‘서민 풍경’ 그 자체다. 특히 의정부~서울역 구간이 그렇다. 함박을 인 아낙네, 꾸러미를 짊어진 아저씨, 등산객, 노인분들-. 공연도 열린다. 맹인과 장애인이 악기를 불며 한 푼을 호소한다. CD·접착제·장갑을 파는 잡품상도 시끌하다. 2~9호선에선 보기 드문 풍경이다. 1호선에는 특히 어르신이 많이 탄다. 칠순 노인이 노약자석을 양보할 정도다. 어르신들이 가장 붐비는 곳은 종로 3가역이다. 인근에 그들만의 공간이 된 종묘공원이 있어서다. 하루 종일 볕 쬐기 하고, 장기 두고, 신문 읽고, 말다툼하면서 소일한다. 무임승차권은 그들의 발이다.

 김황식 국무총리가 최근 곤욕을 치렀다. 노인 전원(65세 이상)에게 지하철 공짜표를 주는 문제를 건드려서다. 노인들은 졸지에 ‘미운 오리새끼’가 됐다. 기자가 종묘공원 어르신들을 만나봤다. “돈 있으면 자가용 타지 지하철을 왜 타” “우리가 뼈 빠지게 일해 나라가 이 만큼 발전했어. 1000원 대접도 못 받나” “자식한테 차비 달랄 필요가 없잖아”…. 부자 노인 얘기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공짜표 논란은 생채기만 남긴 채 없던 일이 됐다.

 고령화 시대의 노인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은 올해 535만 명이다(통계청). 전체 인구의 11%다. 2026년이면 이 비율이 20%를 넘는다. 초고령 사회가 되는 것이다. 독거노인도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의 삶을 어찌할 것인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 국가로서 노인 문제는 선진국 진입의 큰 과제다. 정부가 내놓은(10월 26일) 제2차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갑갑해서 하는 말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1.15명(OECD 평균은 1.71명)이다. 이 추세가 유지되면 2016년부터는 14세 이하 유소년 인구가 65세 이상 노인 인구보다 적어진다. 그래서 75조원을 투입하겠다며 내놓은 것이 이번 대책(2011~2015년)이다. 저출산·고령화 두 바퀴가 잘 맞물려야 하는데 미덥지가 않다.

 저출산 대책은 기업에만 기댄 느낌이다. 직장 보육시설 확대, 근로시간 저축휴가제, 육아휴직 비정규직 여성 계약기간 연장 등이 그렇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처럼 ‘기업 동참’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안 보인다. 고령화 대책은 국무위원들 눈에 콩깍지가 씐 것 같다. 남편 없는 여성 유족연금 상향 조정, 중고령 여성 사이버 멘토링 확대, 고령자 주거안정법 제정 추진 등을 놓고 의사봉을 두드렸다. 고개가 갸웃 된다. 능력·근력·정력이 넘치는 분들, 돈 없고, 아프고, 외로운 분들이 부지기수다. 그런 현실을 감안한 봉사활동 네트워크와 시니어 잡 활성화, 저소득층 배려 등 세밀한 대책이 절실하다. 돈도 제대로 써야 한다. 김 총리와 진 장관은 지하철 1호선을 타 보시라. 그리고 종묘공원에 들러 그곳의 일상을 체험해 보시라. 콩깍지 씐 페이퍼 정책의 허상을 보실 수 있을 것이다. 그게 현장 행정이다.

양영유 정책사회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