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뺨치는 일진회] "배신은 죽음" 용어부터 살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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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은 죽음' '서열' '신고식' '상납'….

조직폭력배(조폭)들의 용어들이 지금 한국의 초.중.고교에선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학교 안에 형성된 폭력서클 '일진회'는 조직에의 충성과 서열을 강조하는 행동강령 등 조폭 문화를 똑같이 모방해 학교폭력을 주도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의 치기 어린 행태라고 보기에는 이미 선을 넘었다.

▶ 학교 폭력은 이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사진 촬영이 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다. 10일 오후 부산과 광주에서 덩치 큰 학생이 작은 학생을 때리고 괴롭히고(上)(中), 심지어 강제로 담배를 피우게 하는 현장이 카메라에 잡혔다.송봉근.양광삼 기자

◆조폭 문화 전수=일진회는 조폭처럼 서열을 강조한다. 일부 일진은 아래로 이진-삼진이라는 조직원을 두기도 한다. 선배 일진들은 '키울 만한' 후배를 물색해 조직을 갖춘다. 이들은 '의리를 지킨다' '절대로 무릎을 꿇지 않는다'는 등의 행동강령 앞에 충성을 맹세하고 절대 복종한다. 의리를 앞세우는 조폭 문화의 전형이다. 신입 회원들에게는 폭력이 전수된다. '티 안 나게 구타하는 법' 등을 소개하고 후배들끼리 서열을 정하는 싸움도 시킨다. 남자 일진과 여자 일진 간에 성관계를 맺는 일이 잦아 피임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일진회를 탈퇴한 A양(15.중3)은 "중1 때 일진회에 가입해 선배들의 지시로 담배와 술을 배웠고, 중2가 되자 후배들에게서 정기적인 상납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흥비는 '꼬붕(일진의 심부름과 돈 조달을 도맡아 하는 학생)'과 '찌질이(힘도 없고 공부도 못하는 학생)'가 댄다. 서울 관악구 S여중의 일진이었던 김모(18)양은 "찌질이들에게서 빌린 돈은 안 갚으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일진''일진회'라는 이름으로 검색어를 입력하면 수백 개의 카페를 찾을 수 있다. 싸우는 요령, 서열을 정하는 방식 등을 게시해 서로의 노하우를 교류한다. 한 카페는 "깡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며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조폭 양성소"=10일 광주에서는 학교 후배 6명을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한 혐의로 광주 모 중학교 2학년 정모(16)군 등이 구속됐다. 정군이 폭행에 동원한 물건은 길이 90cm짜리 쇠파이프. 폭행 이유는 '돈을 가져오지 않는다' '옷을 빌려주지 않는다' '선배를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일진회가 실제 조폭과 연계되기도 한다. 전남의 한 고등학교 일진이던 B군(18)은 지난해 선배 일진들의 소개로 이 지역 폭력 조직에 가입했다. 조폭들이 각 학교 일진들을 조직원으로 키우기 위해 특별 관리하는 것이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김충식 전남지부장은 "일부 지역에서는 조폭들이 장학금을 주면서 체계적으로 후배를 관리한다"고 말했다. 일진회가 조폭을 키우는 양성소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일진회의 흉포화.조직화에 교사들은 무방비 상태다. 서울 강남의 모 여고 교사는 숙제를 잘 안 해오는 일진 여학생에게 면박을 줬다가 협박을 당했다. 일진회에 속해 있는 여학생의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를 괴롭히면 일진들을 다 풀어서 죽여버리겠다"고 전화를 걸어왔다고 이 교사는 실토했다. 교사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진의 주도로 숙제나 등교를 집단 거부하는 일도 버젓이 일어난다.

◆경찰, 일진회 해체 나서=경찰청은 10일 각 학교의 일진회를 파악해 해체를 유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일진회의 일탈이 도를 넘어섰다는 판단 때문이다. 경찰은 신고된 학교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일진회를 적극 파악하고 해당 학생들을 형사처벌하기로 했다.

'일진회'의 은어

◆찐:'일진'의 준말, 소속 개개인을 일컬음

◆일짱:일진 중 가장 싸움 잘하는 학생

◆찌질이:힘도 없고 공부도 못하고 못 생겼다는 이유로 일진들에게 맞는 학생

◆니지랄:민망할 때 쓰는 감탄사

◆재미:담배

◆따가리:라이터

◆물갈이:후배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선배들이 번갈아 때리는 행위

◆일락:'일일 록카페'의 준말, 카페를 통째로 빌려 함께 술 마시고 춤추는 행위

김승현.손해용.천인성 기자 <shyu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23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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