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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보병 전투'는 전술 교과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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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974년 중국에서 발견돼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진시황릉 병마용갱은 2200년 전 진나라 군대의 위풍당당한 전투대형을 어제 일인양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길이 230m, 너비 62m에 군사 8000여 명과 말 500여 필, 전차 130대가 열한 줄로 늘어서서 명령만 떨어지면 당장 달려나갈 듯한 전투대형을 갖추고 있다. 황제가 죽을 때 산 채 함께 묻히는 대신, 그들의 모습과 크기를 그대로 본뜬 도기 인형으로 만들어져 무덤 곁에 묻혀 지금까지 시황제를 호위하고 있는 것이다. 금방이라도 화살통에서 화살을 빼내 시위를 당길 듯한 병사, 오른발을 모로 하고 서서 활쏘는 자세를 취한 병사, 몸을 살짝 굽히고 두 손을 내밀어 고삐를 잡은 전차병…. 병사들은 모두 계급.나이.출신에 따라 얼굴 표정까지도 다르게 살아 움직이는 듯이 만들어져 있어 관광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개미 중에서 매우 잘 발달된 큰 턱을 가지고 집단으로 군사활동을 하면서 먹잇감을 무참히 공격해 주위의 동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개미가 있다. 그들은 고도로 발달된 군사전술을 가지고 있어 군사개미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미 1억 년 전 백악기 때부터 현대 군에서 쓰고 있는 군사전술을 개발하였다.

이들은 브라질 아마존 정글에 주로 서식하며, 하나의 여왕개미가 한번에 약 100만 개체의 자손을 생산한다. 수백만 개의 캠프로 구성된 대형 군서(群棲)를 만들면서 방랑자 생활을 한다. 이들의 군서는 여왕개미.알.번데기.병정개미.일개미로 구성된다. 여왕개미는 날개가 없으며 알을 낳고 대형 병정개미는 전투에 주력하며 중간 크기의 일개미는 먹이를 물어오고, 가장 작은 일개미는 여왕개미의 자손을 돌본다.

일정한 기간 한 곳에 정착하여 살다가 먹이가 필요한 경우 먹이를 찾아 집을 나와 행군한다. 밤에는 행군하고 낮에는 일정한 지역에 캠프를 차리고 휴식을 취한다. 다시 행군이 시작되면 흔적 페로몬을 따라 일제히 첨병들의 뒤를 따라간다. 개체수가 너무 많아 마치 홍수가 나서 붉은 흙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이 지나가는 자리는 거의 아비규환의 살육전이 벌어진다. 장애물을 만나면 앞뒤의 개미들이 큰 턱과 발톱으로 물고 물려 서로를 연결한 다음 긴 사슬을 형성해 암벽을 넘어가거나, 바람을 이용해 그네처럼 흔들다가 뛰어 강을 건너간다. 군의 유격훈련은 이것의 모방이라고 생각된다. 이들은 눈이 없지만 더듬이로 모든 정보를 받아들여 명령을 이해하고 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진화하였다.

이들은 도마뱀.뱀.닭.돼지.염소.전갈, 그 외에 많은 동물들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 10만 마리 이상 포획할 수 있다. 행군할 때 개미새는 하늘에서 개미떼를 따라가며 포획하고 남은 부상병들을 잡아먹으면서 축제를 벌인다. 꼭 하이에나를 닮았다.

적들의 밀도가 낮을 경우 병정개미들은 수직으로 중심 깊이 적진을 뚫고 들어가 적을 반으로 갈라놓고 좌우 측면을 공격한다. 그러나 적이 밀집해 있을 경우는 부채모양의 전투대형을 취하여 공격한다. 미리 후방에 준비해둔 특공대를 전투가 팽팽할 때 투입하는 것을 보고 개미학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포획된 전리품(동물의 시체)은 부채꼴 뒤에 대기해 있는 예비대에 의해 후방으로 보내져 집에 저장하였다가 식량으로 쓰인다.

요사이 군에서 사병들이 조그마한 어려움이 있어도 참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심지어는 자살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어 안타깝다. 병정개미들이 그들에게 뭐라고 말할까? "우리는 하찮은 몸이면서, 눈 없이도 지구에서 가장 용맹스러운 병정개미가 되었는데 사내들이 어찌 그렇게 나약하냐"고 힐책할 것 같다.

김병진 원광대.곤충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