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시간41분56초 동안 잠 안자고 영화 37편 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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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천씨

'잠 안자고 얼마나 오랫동안 영화를 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방송작가 김수천(34)씨는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충무로 스카라 극장에서 열린 '제2회 도전, 잠 안자고 영화보기'대회에서 대학생 노형식(29)씨와 함께 66시간 41분 56초 동안 쉬지않고, 37편의 영화를 보는 기록을 세웠다.

김씨는 37편의 영화를 보는 동안 ^5초 이상 눈을 감거나^옆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고, '순수하게' 영화만 본 셈이다.

미혼인 그는 자신의 '영화오래보기' 기록을 놓고 인터뷰 중간중간 "내가 생각해봐도 '미친 짓'"이라며 "영화를 함께 볼 애인이나 빨리 구하고 싶다"며 웃었다.

김씨의 기록은 지난 1회 대회 때의 59시간을 7시간 가량 늘린 것이다. 세계기록은 70시간 1분이다.

김씨는 25일 오후 7시, 고(故) 이은주의 '하늘정원'을 시작으로 37번째 영화인 '반칙왕' 관람 도중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대회를 마쳤다.

그는 "많은 분들이 '조금만 더 버티면 세계기록 아니냐'며 아쉬워하셨다"며 "세계기록을 목적으로 하는 경주 대회가 아니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축제에 참가한 것이기에 아깝지 않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씨는 대회를 주최한 시네마 TV 후원으로 제 58회 칸 영화제를 둘러볼 수 있는 특전을 얻었다.

다음은 김씨와 일문일답.

- 대회에 참가한 계기는.

"원래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일에도 도움이 되고…. 부산국제영화제 등 영화제가 있으면 빠짐없이 참가하는 편이다."

- 처음부터 기록을 의식했나.

"지난해 이런 대회가 있다는 얘길 듣고 웃었다. '참, 별걸 다하는 사람들이다'하고. 악으로 버틴 것은 아닌데, 뒤를 보니까 한 명 남아있었다."

- 힘들지는 않았나.

"지금 생각해보니, 힘들었던 것같다. 대회 전에 지난해 기록(59시간)을 듣고, '참 독한 사람이구나'하고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있다. 기록 수립같은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냥 '단순히 한 번 해보지 뭐' 하는 기분이었다. 대개 한 두해 정도 지난 영화들을 대회에서 보여줬는데, '언제 또 이런 영화를 볼까'하고 생각하니 그냥 보게 되더라. 원래 금요일 밤에 갔으니, 토.일요일 영화보고, 친구들과 소주 한 잔 할 생각이었다.(웃음) "

- 다른 사람들 떨어지는 것보니 기분이 어떻던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영화는 같이 보는게 맛이라 생각한다. 영화 한 편 보고 나면 10여명씩 사라지더라. 5명인가 남았을땐 영화 볼 맛이 나지 않았다. '영화폐인'들끼리 같이 남아서 밤새도록 노는 축제라고 생각했다."

- 잠 안자는 노하우가 있다면.

"그런 노하우는 진짜 없다. 대회 전에 '초코렛을 좀 숨겨갈까'하고 생각하긴 했는데, 정작 당일엔 시간이 없어서 챙기지 못했다. 앞 자리 분은 대회 중간에 목에 물파스를 바르더라.(웃음)"

- 언제가 제일 힘들던가.

"45시간 정도 지났을때다. 예상하고 온 것보다, 시간도 많이 지난 것같고…. 나가려고 하다가, 새벽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가 '이왕 미친 짓한거 계속하라'고 하더라."

- 영화를 보는 동안 화장실 문제도 만만치 않을 것같은데.

"영화 세 편 마다 15분 정도 쉬는 시간을 줬다. 화장실이 가고 싶을 것같아 마음대로 먹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화장실이 붐비니 '배변참기' 대회인가 싶었다. 그런데, 인간이 환경에 적응을 한다고 하루 지나고 나니 자동적으로 조절이 되더라."

- 오랫동안 영화를 보면서 이상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생기지는 않던가.

"사람들이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변하더라. 쉬는 시간 동안 계속 극장 안을 뛰어다니는 분도 있었다."

- 독하다는 얘기를 평소 듣는 편인가.

"좋아하는 것은 미친 듯이 하는 편이다. 어른들도 고스톱 시작하면 2~3일씩 쌩쌩하게 치시지 않나. 월드컵 이전에는 나도 축구 극성팬인 친구를 놓고 '미쳤다'고 말한 적이 있다. 월드컵이 지나고 나니 친구 심정을 알 것같더라. 이런 이벤트에 대해 '미친 짓'이라는 시각이 있는 것도 안다. 그러나 한국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보다 더 막강해지기 위해선 영화를 잘 만드는 것 뿐 아니라, 영화를 알릴 수 있는 여러가지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본다."

-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부산 국제영화제에 1회 때부터 빠지지 않고 다녔다. 부산에 가면 1주일 동안 30여편 가량 본다. 표사느라 줄서고, 기다리고…. 이번 대회보다 더 힘들다. 그런데도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그런 분위기가 좋다. 4회때인가, 해외 취재진이 우리 부산 국제영화제에 열광하는 팬들을 보고 '이 정도면 한국의 영화를 무시할 수 없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뿌듯함을 느꼈다."

- 가족들 반응은.

"솔직히 가족들이 아실까 겁났다. 아버님은 처음엔 '왜 그랬냐'고 물으시더니, 나중가서는 '몸 축내면서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그러셨다.(웃음) 누나는 '재밌었겠다'며 좋은 추억꺼리로 이해해 주시더라."

- 대회 전후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언론에 알려지면서, 처음엔 부끄러웠다. '완전히 미친 놈'이라는 반응도 많았고. 그러나 내 인생관이 원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일탈을 하는 것이다. 대회는 내 생활의 활력소가 됐다. 연락이 뜸해졌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오기도 하고, 친구들과 화제꺼리도 생기고 좋아졌다."

- 영화가 물리지는 않던가.

"친구들이 '영화보여 줄테니 나오라'며 놀리기도 한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은 물리지 않는 법이다. 요즘도 보고 싶은 영화가 나오면 조조로 다 본다."

-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있다면.

"액션.호러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정(情)을 담은 작품을 좋아한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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