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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 조사단 왜 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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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목숨 건 단식으로 국책사업을 막은 장본인이 조사단에 직접 참여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총리실의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기자를 만나 이렇게 하소연했다.

정부는 지난달 초 지율스님 측과 고속철도 터널공사가 천성산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3개월간 공동 조사키로 합의했다. 공사로 인해 천성산 환경이 파괴된다며 100일간이나 단식을 벌인 지율스님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양측은 각각 전문가 7명을 추천, 모두 14명으로 조사단을 구성키로 했다.

지난 2일 양측은 각자가 추천한 조사단 참여 인사 명단을 교환했다. 그런데 지율스님 측 조사단에 지율스님 본인이 포함된 것이다. 정부 측에선 사업 시행주체인 한국철도시설공단본부장이 전문가 6명과 함께 들어가 있었다.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한 것이다. 이들이 조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지율스님의 참여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어이없어 하고 있다. 이해찬 총리가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우려할 정도다.

이 때문에 지난 3일 조사단 첫 회의에서 철도시설공단본부장이 지율 스님에게 "조사단에서 함께 빠지자"고 제안했다. 전문가들에게 다 맡기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율스님은 "조사단 지원 차원에서 참여한 것으로 전문가들의 조사에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환경단체 관계자는 "우려 섞인 시각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자신으로 인한 문제인 만큼 직접 참여해 풀고, 조사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다는 스님의 뜻이 강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고속철도사업은 특정인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막대한 혈세가 투입되고 국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대형 국책사업인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사업이 상당 기간 전면 중단될 수도 있다. 그래서 과거 어느 때보다 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중요하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조사가 거꾸로 새로운 불씨가 돼선 곤란하다. 지율스님이 조사단 참여를 재고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강갑생 정책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