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IMF 개혁하자” … 주요 정상들 직접 전화 설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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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3일 경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마음 졸이며 지켜본 사람은 이명박(사진) 대통령이라고 G20 준비위 측은 밝혔다.

 환율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과 국제통화기금(IMF) 쿼터 개혁 등을 직접 챙겨왔기 때문이다. G20준비위 핵심 관계자는 24일 “경주 회의 때 이 대통령이 하루에 네 통의 전화를 걸어와 회의 상황을 묻더라”고 공개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도 경주 회의 뒤 “이 대통령이 직접 회의에 참석해 ‘합의를 안 해주면 공항을 폐쇄하겠다’고 말한 게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MB “환율문제 아이디어 내라”=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이 시작된 9월 이 대통령과 청와대, G20준비위엔 비상이 걸렸다. 아무리 좋은 합의를 이끌어내도 환율문제가 타결 안 되면 G20회의가 퇴색하기 때문이다. “IMF 쿼터 개혁만 타결되면 100점까지 받을 수 있다”던 정부 내 낙관론도 쑥 들어갔다.

 이 대통령은 G20 관련 핵심 참모들을 모아 긴급회의를 했다. 그러곤 “뭔가 아이디어를 내라”고 독려했다. 사공일 위원장을 비롯한 G20준비위는 중재안을 짜냈다. ‘환율문제만으로 중국과 미국이 줄다리기를 하면 해결책이 안 나오니, 경상수지 불균형 문제를 함께 제기해 환율문제를 간접적으로 해결하자’는 게 골자였다. 사공 위원장은 미국의 래리 서머스 국가경제위원장을 만나 “환율문제만 고집하면 중국이 전혀 안 움직인다. 큰 틀로 ‘경상수지 불균형을 줄이자’고 합의하면 그 안에서 중국이 정책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서머스 위원장은 “아주 흥미롭다(very interesting)”고 반응했다고 한다. 사공 위원장은 중국의 고위급 인사들과도 직·간접으로 만났다. 그 결과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이 경주 회의 개막 직전 “향후 몇년간 대외수지 불균형을 국내총생산(GDP)의 일정 비율 이하로 줄이자”는 서신을 참가국들에 돌리면서 ‘불균형 문제와 연계된 환율문제 해결 방안’이 탄력을 받았다.

 ◆IMF 쿼터 조정=G20 관계자는 이번에 경주회의에서 합의된 IMF 쿼터 조정의 어려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쿼터의 5%를 신흥국과 개도국에 넘긴다는 건 지난해 9월 피츠버그회의에서 합의됐다. 하지만 누가 주고, 누가 받느냐는 합의가 없었다. 예를 들어 배에 백 명이 타고 있는데 다섯 명이 바다에 빠져야 모두 살 수 있다면 누가 배에서 내리느냐가 관건 아니냐.”

 해결은 쉽지 않았다. 외신은 “G20 정상회의가 무용화되고 있다. 서울회의도 어렵다”는 비관론을 쏟아냈다. G20 관계자들은 이 대통령에게 “다른 기술적인 문제들은 실무자들이 합의할 수 있지만 IMF 개혁 문제는 장관급이나 정상급에서 해결하실 문제”라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이 대통령이 나서 스트로스칸 IMF 총재와 직접 전화를 했고, 사공 위원장도 워싱턴 출장 때마다 IMF 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댔다. 결국 경주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한 스트로스칸 총재는 이 대통령에게 “유럽과 미국 간에 큰 타협만 되면 해결이 가능하다”고 조언을 했고, 이에 따라 우리 정부가 적극적인 중재에 나섰다고 한다.

 경주 회의에선 기존 합의(5%)보다 쿼터 이전 규모가 1%포인트 늘어나는 ‘해피엔딩’을 낳았다.

 ◆그리스 위기와 IMF 제도 개선= 지난 9월 탄력대출제도(FCL)와 예방대출제도(PCL) 도입을 골자로 한 IMF 제도 개선 방안이 발표됐다. 위기에 처한 국가가 IMF로부터 쉽게, 선제적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이 방안이 마련된 배경은 이랬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G20준비위원회 출범 때부터 “G20에 속하지 않은 국가들이 공감할 주제를 찾아보라”고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 자금을 받은 경험이 이 문제를 적극 제기하는 추동력이 됐다. 당초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 사공 위원장은 서머스 미국 국가경제위원장을 여섯 번이나 만나 설득했다. 그래도 진척이 없자 이 대통령이 주요국 정상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리스 위기가 터지자 이 대통령은 “이 문제는 유럽에 문제가 생겨 이 기능(IMF 자금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는 지금이 적기”라고 박차를 가했다.

 우여곡절 끝에 합의되자 실무진은 “11월 정상회의에 맞춰 발표하자”고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한국의 이익만을 위해 G20을 하는 게 아니다. 전 세계에 공공재를 제공한다는 생각으로 일해야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며 9월 발표를 밀어붙였다.

서승욱·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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