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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의 명장] 현대식 인테리어에 나전 접목 구슬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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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정명채(59·사진) 나전장(서울무형문화재 제14호)의 눈은 항상 충혈되어 있다. 머리카락 굵기의 자개와 씨름한 흔적이 눈의 실핏줄로 남아 있다. 나전은 옻칠한 나무에 자개로 무늬를 놓는 작업이다. 정씨는 “작업하다 보면 자개가 빛에 반짝여 ‘매직아이’ 같은 착시현상도 나타난다”고 했다. 이 반짝임에 끌려 40여 년을 나전장으로 살았다. 196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에서 서울 나들이를 했을 때다. 정릉동에 사는 친구 옆집에 통영 사람이 나전 일을 하고 있었다. 정씨는 옻칠한 까만 바탕에 놓인 자개의 무지갯빛에 도취했다. 그 집에서 7년을 살며 나전을 배웠다.

 나전의 기본은 옻칠이다. 자개를 놓을 나무에 온도(섭씨 23도)·습도(75%)에 예민한 옻칠을 10번 이상 해야 한다. 새까만 도화지를 화려하게 장식할 주인공은 자개다. 주로 전복류의 패각을 쓴다. 한려수도에서 나는 전복 껍데기를 최고로 친다. 오색영롱한 빛깔 때문이다.

 나전은 자개를 붙이는 기법에 따라 천의 얼굴을 갖는다. 자개를 실톱으로 오려서 붙이는 ‘주름질법’, 짧은 선으로 잘라 붙이는 ‘끊음질법’, 부숴서 붙이는 ‘활패법’ 등을 디자인에 따라 다양하게 쓴다.

 정씨가 만든 보석함·서류함 등 나전 작품은 대통령의 외국 방문 시 국빈 선물로 인기가 높다. 1996년 방한한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은 정씨가 만든 2층 장을 선물받았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방북하기에 앞서 청와대로부터 “나전칠기 병풍을 20일 만에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있었으나 정씨는 고사했다. 정씨는 “옻칠로 제대로 된 나전 작품을 만들려면 두 달이 더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평구 역삼동 작업장에서 1년에 3~4개의 나전 작품을 만든다. 2층 장의 경우 1억원을 호가한다. 대중용품으로 쟁반·그릇 세트 등을 만들기도 한다.

 장씨는 나전의 현대화를 놓고 고민이 많다. 살균효과로 몸에 좋은 옻칠과 자개를 현대식 인테리어에 접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조개 곡면을 평평하게 펴 자개로 만드는 우리 가공기술에 세계인이 놀라고 있습니다. 나전 기술을 옛것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아깝지 않나요.”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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