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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광부 구조가 ‘완벽한 쇼’ 처럼 보인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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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칠레 광부 33명이 구조된 뒤 10일이 지났다. 이제 우리 모두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사건을 되짚어봐야 할 때가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처음 사고가 터졌을 때부터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만 ‘결정적인 증거’를 잡기 위해 그동안 꾹 참았다. 이제 내가 모은 증거로도 의혹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두렵다. 떨린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려 한다.

가장 큰 의혹은 구조터널을 뚫은 지점이다. 아시다시피 광부들의 생존 소식이 알려진 직후 3개의 구조터널 굴착 프로그램이 잇따라 발표됐다.

사고 발생일인 8월 5일 갱도가 붕괴된 지점은 지하 400m 부근 작업장이었다. 이틀 뒤인 7일 이들을 구조하려다 2차 붕괴가 발생한 지점이 지하 470m 부근이다.

여기서 첫 번째 결정적인 의혹이 제기된다. 구조는 촌각을 다투는 화급한 작업이다. 그렇다면 구조터널 뚫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하기 위해 광부들이 다닐 수 있는 갱도 중 지상과 가장 가까운 곳을 목표로 뚫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가장 먼저 결정된 플랜A는 700m, 플랜B는 624m, 플랜C는 590m짜리 터널로 결정됐다. 갱도는 완만한 경사의 지그재그식 터널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갇힌 광부들은 지하 480m 지점까지는 기존 갱도를 통해 걸어서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도 지하 480~590m 사이 갱도는 모두 배제됐다. 여기에 대한 분명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두 번째, 구조된 광부들의 모습에서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나같이 너무 건강했다. 특히 두 번째로 구조된 마리오 세풀베다(40)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행동을 보였다. 캡슐에서 내리자마자 승강장 아래로 내려가 불끈 쥔 주먹을 허공을 향해 휘두르며 펄쩍펄쩍 뛰던 모습이 그것이다. 70일 가까이 지하에 갇혀 있었던 사람의 움직임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전문가들은 세풀베다의 행동이 비정상적이라고 고발하는 것 같은 기사를 썼다. 전문가들은 “구조된 광부들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우주인처럼 세반고리관 등 동적인 감각이 흔들릴 수도 있다”며 “특히 척추나 관절 근육이 운동 부족으로 매우 약해져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디 그뿐인가. 에디손 페냐(34)는 구조된 지 불과 열흘 만인 24일(현지시간) 철인3종 대회에 출전해 10.5㎞ 마라톤 코스에 도전한다고 한다. 이걸 인간승리라고 해야 할지.

선글라스를 계속 끼고 있다는 점도 의심스럽다. 물론 구조 순간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것은 이해가 된다. 깜깜한 지하생활을 하다 갑자기 밝은 빛에 노출될 경우 시력을 잃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상으로 나온 지 며칠 뒤에도 이들은 여전히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다. 볼리비아 출신 광부인 카를로스 마마니(23)는 구출된 지 5일 후인 18일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과 만날 때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닷새라면 빛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 아닌가.

그렇다면 왜 이들은 계속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던 걸까. 사람들을 만나 지하생활에 대해 얘기하다 ‘자신 없는 눈빛’이 노출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은 아닐까. 광부들이 말을 맞춘 정황도 드러났다.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중구난방식으로 인터뷰하다 ‘조작’한 것이 탄로 날까봐 그런 건 아닐까.

마지막으로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에게도 의혹의 눈길을 거둘 수가 없다.
광산 사고가 난 것은 8월 5일이다. 시기적으로 대통령이 아주 힘든 때였다. 3월에 취임한 뒤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지지율이 40%대로 추락했다. 더군다나 500여 명의 희생자와 200만 명의 이재민을 낸 올 2월 지진의 후유증으로 민심도 흉흉했다. 뭔가 ‘이벤트’가 필요했다.

광부들의 생존 소식이 알려질 때부터 구조 완료까지 피녜라 대통령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항상 현장을 지켰다. 이런 모습이 전파를 타고 칠레뿐 아니라 전 세계로 보도됐다. 대통령의 지지도는 급상승했다.

한 편의 잘 짜인 드라마처럼 70일간의 구조작업은 완벽한 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피녜라 대통령의 연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제 바른 말을 해야겠다. 이미 눈치 챈 독자분들도 계시겠지만 지금까지 쓴 글은 필자가 만들어 본 칠레 광부 음모론이다. 하나하나 의혹을 제기하면서 탄탄해지는 논리와 연이어 나오는 사례에 솔직히 필자도 놀랐다. 음모론이 난무하면 진실이 거짓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의심하려고 마음먹으면 끝이 없다.

박경덕 기자 polee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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