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공격하는 사람도 인정하고 존중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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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2일 오전 서울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7회 국가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기도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2일 "민주주의의 핵심은 대화와 타협, 그리고 화해와 포용"이라며 "대통령도 앞으로 그리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있은 제37회 국가 조찬기도회에서 한 연설이다. 노 대통령은 "나와 뜻이 다른 사람, 나를 공격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만큼 반드시 상대를 존중하겠다"며 "뜻이 다를 때는 대화와 타협으로 뜻을 맞추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화합과 실용을 부쩍 강조해 온 노 대통령 사고의 변화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결정판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재건.이상득 의원 등 국회 조찬기도회 소속 여야 의원과 교계 인사 1500여 명이 박수를 보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사람 사는 역사가 이미 증명하듯 모든 사람의 뜻이 다 하나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그래서 민주주의는 하나의 규칙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규칙으로 선거하고, 표결하고, 결과를 승복하고, 다음 심판의 시기까지 기다리고, 패자는 다시 승자가 될 기회를 갖는 게 민주주의 원칙이자 도리"라며 "이런 원칙을 충실히 따르려 하니 내 양심이 깨어 있고 절제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해 다시 박수를 받았다.

이에 앞서 최건호 충무교회 담임목사는 설교를 통해 "노 대통령과 국가 지도자들이 (화해와 일치의) 예수 그리스도께 코드를 맞추고 기도한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변할 것"이라고 '화합의 대통령'을 기원했다.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도 "대통령에게 국민 화합과 경제 회복의 지혜와 의지, 건강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했다.

천주교회에서 '유스토'란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았던 노 대통령은 이날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며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방안에 가득한 하느님의 은총을 몸으로 느끼고 하느님의 권능을 믿는다"고 했다. 또 "젊은 시절에 무관심과 안일에 빠져 있던 나를 일깨워 양심에 눈뜨게 하고 인도해 주신 분들도 기독교 지도자였다"고 술회했다.

노 대통령이 "쓴소리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며 화합 기조를 처음으로 천명한 게 지난해 12월 14일 기독교방송 창립 행사였다. 이 때문에 종교 행사를 전기로 한 사고의 변화 흐름도 눈길을 끌고 있다.

취임 초반 노 대통령은 "낡은 틀을 고치고 새 집을 짓기 위해서는 혼란이 불가피하다" "과거를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을 때도 있다"고까지 했었다. 이 때문에 이날 언급은 '편가르기식 국정 운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이 같은 스타일로부터의 변화를 국정 기조로 정착시켜 나가는 과정이 아니냐는 기대도 낳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최근 경기 회생 기미가 보이는 등 노 대통령 스스로 자신감이 커지는 국면"이라며 "당정 분리, 분권형 국정 운영에 따른 정쟁으로부터의 해방에 의한 안정감이 겹쳐 갈수록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최훈 기자 <choihoon@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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