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복직 '진흙탕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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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미대 김민수(44) 전 교수의 복직을 둘러싸고 김씨와 일부 교수 간의 감정싸움이 격화되고 있다.

'재임용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인사위원회는 25일 김씨에 대한 교수 임용안을 부결시켜 김씨의 복직에 제동을 걸었다. 현행 교육공무원법은 인사위의 동의 없이 대학 총장이 교수 임명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씨의 임용안이 28일 열리는 인사위 재심에서도 통과하지 못할 경우 김씨의 재임용 문제는 또 다른 법정 싸움에 휘말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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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실 연구인가, 괘씸죄인가=미대 디자인학부 교수였던 김씨는 1998년 '연구 실적 부실'을 이유로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 서울대에서 교수가 재임용에 탈락되기는 처음이었다. 이후 두 차례 재심이 열렸지만 '부적격'판정을 받았고, 김씨는 교단을 떠나야 했다. 이에 김씨는 미술계 원로들의 친일 행각을 언급해 동료교수들에게 '괘씸죄'에 걸렸다고 반발했다. 재임용 탈락 2년 전인 96년 서울대 개교 기념 심포지엄 논문에 장발 미대 초대 학장 등 원로 3명의 친일 행위를 거론한 게 발단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당시'해당 부분을 삭제하라'는 등 압력을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법정 투쟁에도 들어갔다. 김씨는 99년 1월 서울대를 상대로 재임용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내 서울고법과 대법원을 오가는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지난달 28일 서울고법은 "학교 측이 인사위 의결에 따라 원고를 재임용하지 않은 것은 절차상의 잘못"이라며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그러나 '친일 폭로'나 미대 측의 '표절 의혹'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아 불씨를 남겼다.

◆ 감정 악화=김씨와 미대 교수들 사이의 갈등은 법정 공방 속에서 심화됐다. 김씨는 이 기간 중 대학본부 앞에서 천막을 치고 학생들에게 '무학점 강의'를 하는 등 무기한 농성으로 대학 측에 맞섰다.

특히 김씨는 "내가 지은 죄가 있다면 패거리 문화에 동조하지 않은 것""서울대 미대 교수들은 '지적 마피아'"라며 미대 교수들을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반면 미대 교수들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김씨의 복직 방침이 정해지자 집단으로 반발하고 있다. 이들 교수는 "김씨의 연구물 중에는 출처의 인용 부호 없이 베껴 쓴 부분이 많다"며 "김씨가 다시 돌아오면 미대가 망한다"고 자신들의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상당수 미대 교수도 "98년 재임용 심사 때 심사위원들이 김씨의 연구가 창조성이 결여됐다고 판단했을 뿐 아니라 일부 논문에서 표절도 발견했다"며 디자인학부 교수들을 거들고 있다.

한편 미대와 김 교수의 대립이 6년 반을 끄는 동안 법원의 판단만 기다려 온 서울대 측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장호완 서울대 교수협의회장은 "재임용 탈락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학교는 양측의 대화를 권유하기보다 소송에만 매달려 감정의 골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천인성 기자

<김민수씨 사건 일지>

▶ 1994년 김민수씨, 서울대 미대 디자인학부 조교수로 임용

▶ 96년 김씨, 서울대 50주년 심포지엄에서 미대 원로 교수들의 친일 행적을 언급한 논문 발표

▶ 98년 7월 김씨, '연구 논문 부실' 이유로 재임용 심사 탈락

▶ 99년 1월 김씨, 재임용 거부 처분 취소 행정소송 제기

▶ 2000년 1월 서울행정법원, "'연구 실적 미달' 근거 없다"며 김씨 승소 판결

▶ 2000년 8월 서울 고법, "교수 재임용 여부는 법원의 심사 대상이 못 된다"며 각하

▶ 2003년 8월 김씨, 학교 본부 앞 천막 농성 돌입

▶ 2004년 4월 대법원, "재임용도 행정소송 가능하다"며 파기 환송

▶ 2005년 1월 서울고법, '재임용 거부는 부당' 승소 판결/서울대, "상고 포기, 판결 수용" 밝혀

▶ 2월 21일 미대 디자인학부 교수 11명, 김씨 복직에 반발해 집단 사표

▶ 2월 25일 학교 인사위원회, 김씨 복직안 부결

▶ 2월 27일 김씨 천막 농성 계속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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