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관리사로 새 삶 찾은 여성부 창업지원 '1호 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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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줄 거야/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하늘로 더 넓게 펼쳐보이며/다시 새롭게 시작할 거야/더이상 아무 것도 피하지 않아.”

2월 어느날 서울 번화가에 스무평 남짓한 규모의 A 피부관리실이 문을 열었다.피부관리사 김소연(29·가명)씨가 개업한 이 가게에선 위와 같은 가사의 가수 임재범 노래 ‘비상’이 울려퍼졌다.

김씨가 몰려드는 손님들에게 인사하느라 바쁜 동안,몇몇 개업 축하손님들은 이 노래를 들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가사가 김씨의 각오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2년 전까지 성매매 피해여성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여성부의 '성피해 여성들에 대한 창업자금 지원사업' 대상자로 뽑히면서 3000만원의 무이자 융자를 받게 됐다. 지난해 9월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면서 나온 자활대책이다. 지난 2년간 피부관리사로 창업을 준비해온 김씨는 이 돈으로 이날 자신의 가게를 열었다. 비록 가게 규모는 작지만 어엿한 사장이 됐다. 게다가 김씨는 이 사업 대상자 가운데 첫 창업자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어두운 과거를 뒤로 하고 세상 밖으로 당당히 나와 가슴을 활짝 펴게 된 것이다.

개업식에 참석한 손님들 앞에서 김씨는 "어젯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이제는 어디 가서도 당당하게 내 명함을 내밀 수 있겠다"며 소감을 밝혔다. 김씨는 초등학교 때 부모님을 여의고 친척 집에서 어렵게 자라다가 17세 때 가출, 티켓다방이나 섬에 끌려가는 등 10여년 동안 성매매 현장을 전전했다. 2003년 일하던 업소가 미성년자 고용혐의로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한 경찰이 동료에게 여성 긴급상담 전화번호인 '1366'을 알려주는 것을 들었다. 얼마 뒤 그는 업주 눈을 피해 이 번호를 눌렀고 덕분에 성매매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게 된다.

그는 성매매 피해여성 쉼터로 거처를 옮기고 법률지원단의 도움을 받아 업소 선불금 문제를 해결한 뒤 몸의 병까지 말끔히 치료했다. 그러자 평소 관심있던 피부관리 과정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서울시 중부여성발전센터에서 운영하는 직업훈련 프로그램 중 피부관리 과정에 등록, 손이 부르틀 정도로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익혔다. 1년 동안 안면경락.전신 피부미용.하체 순환관리(발관리) 등을 배운 뒤 '피부관리사 창업반'에 등록하고 해외연수도 다녀오는 등 본격적인 창업준비에 들어갔다.

쉼터 사무국장으로 김씨를 도와준 최정은씨는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재활하겠다는 의지"라며 김씨를 격려했다.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담당한 여성부 정봉역 권익증진국장은 "많은 여성이 희망을 갖고 창업에 도전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씨 사생활보호를 위해 기사 중 날짜와 장소 등을 두루뭉수리로 처리했습니다.)

이원진.김은하 기자
이보미(한국외대 불어 4)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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