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경쟁력이다] 북제주군 '들불 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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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북제주군의 새별오름에서 펼쳐진 '들불놓기'. 불꽃놀이와 어우러져 마치 화산폭발을 연상케 한다.[북제주군청 제공]

지난 19일 오후 7시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서부관광도로 변 기생화산인 새별오름. 매서운 찬바람과 눈보라속에서도 1만여명의 관람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민.관광객 300여명이 횃불을 들고 산 곳곳에 설치한 50여개의 '달집'(불씨를 키우기 위해 만든 짚단.나무더미)에 일제히 불을 놓았다.

순식간에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달집이 타기 시작했다. 이어 산허리와 정상부분에 있던 달집으로 불길이 옮아 가면서 불꽃놀이와 레이저 쇼가 어우러지며 마치 화산폭발을 연상케 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관람객들은 탄성과 함께 저마다 올한해 '무사안녕'을 빌었다.

수백년을 이어 온 전통의 '들불놓기'(火入)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제주도 북제주군의 '정월대보름 축제'는 자연을 활용한 대표적 겨울 이벤트로 자리잡았다. 북제주군 인구(10만여명)의 2배를 웃도는 20여만명의 관람인파가 밀려오고, 방목지 해충까지 구제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

◆ 민원 고민 끝에 탄생한 초대형 쥐불놀이=1995년 민선 1기 군수로 부임한 신철주 군수에겐 골칫거리가 있었다. 틈만 나면 소.말을 방목하는 농민들이 찾아와 "목장용 초지에만이라도 불놓기를 하게 해달라"고 요구해 왔다. 산불을 우려해 정부가 1970년대부터 불놓기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에선 수백년전부터 오름을 소.말의 방목지로 쓰고 있었고,가축을 방목하려면 겨울철 진드기 등 해충을 구제하는 불놓기는 필수적이었다. 그 때문에 몰래 불을 놓다가 산불을 내는 농민이 많아 "범죄자만 만든다"는 볼 멘 소리가 잇따랐다.

목장지로 쓰이는 전국 초지면적의 39%를 제주도가 차지하는데다 북제주군은 제주도에서도 가축방목의 중심지다. 북제주군 지역의 야트막한 오름 등에서 방목중인 소는 제주도 전체의 81%인 1만7525마리이고, 말은 50%인 6664마리다.

신 군수는 고민끝에 산림청을 졸라 산불대책을 마련한 일부 방목지의 경우 불놓기를 허용해 줬다. 그러다 "큰 산불로 번져가지만 않는다면 불놓기 장관으로 관광객을 끌어 모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보아왔던 '들불놓기'장관이 머릿속을 스쳐간 것이다.

◆ 동네축제서 제주 대표 축제로=97년 첫 행사를 치른 들불축제는 마을축제에 불과했다. 그저 그런 행사와 토속음식을 파는 정도의 행사에 관람객도 기껏 1만3000여명 수준이었다. 그러나 다음해 북제주군은 자체적으로 들불축제 기획단을 만들고,행사를 다양화했다.

축제 횟수를 거듭하며 '보다 더 제주적인 모습을 보여주자'며 방목되는 말을 소재로 한 '말사랑 싸움놀이'란 볼거리를 만들었고,군이 결연한 중국.일본.미국 등 자매도시의 공연단도 섭외해 축제의 국제화도 시도했다.

또 단순히 보고 즐기는 축제가 아니라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도록 환경단체의 오름탐방 행사와 현장에서 돼지.오리몰이를 하는 체험 행사도 곁들였다.'관람료가 없다'는 점을 들어 여행사에 공격적 홍보에 나섰고, 마땅한 겨울 이벤트가 없는 현실에서 관광객 유인은 자연스런 현상으로 이어졌다.

관내 적당한 방목지를 골라 옮겨다니던 축제도 지난 2000년부터는 새별오름으로 고정, 상징적 '불놓기'축제공간으로 만들었다. 야트막한 화산으로 대표적인 방목지인 새별오름의 가치도 알리고, 축제를 통해 농민들이 원하는 불놓기도 대신 해주는 셈이 된 것.

진입로와 주차장 부지 등 새별오름 주변 땅 9만여평을 지난해 군이 사들였고,오름내 사유지 10만평도 연내 매입하는 등 상설축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도 진행중이다. 소방당국의 협조를 끌어내 250여명의 소방인력과 차량 40대를 축제중에 집중배치,산불확산에 대한 우려도 말끔히 씻었다.

축제는 2000년 12만5000여명이 찾아오는 단계로 발전하더니 지난해 20여만명에 이어 대설주의보가 내리는 등 한파 속에 지난 17~19일 치른 올해 행사에도 10만에 가까운 인파가 몰렸다.

◆ '불붙는 오름'으로 살아난 지역경제=98년과 2001년 두번의 행사를 치르면서 각각 100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가 실패한 제주도의 '세계섬문화축제'와 비교하면 들불축제의 성공은 어리둥절할 정도다.

제주발전연구원은 지난해의 경우 20여만명의 관람객 중 2만5000여명(외지 관광객 2만5000명 포함)의 관람객이 다녀가 축제에 들어간 예산 예산(5억5000여만원)의 12배인 65억원의 관광수입을 올렸다고 밝혔다. 또 98억원의 지역생산 증대효과를 보는 등 모두 232억원의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원의 설문조사에서도 관람객들의 68%가 '꼭 다시 오겠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광객 김정희(42.여.서울 노원구 하계동)씨는 "치솟는 불길속에 모든 액운을 털어냈다. 기대이상 이었다"며 즐거워 했다.

고계성(관광경영학) 제주관광대 교수는 "정월대보름이란 세시풍속과 제주가 갖고 있는 자연의 특징을 결합,지방축제의 기본인 관광객을 유인하는 인프라로서의 가능성이 더욱 기대된다"고 말했다.

제주=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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