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3대세습’에 침묵이냐 비판이냐 …‘진보 vs 진보’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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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민노당 대표

◆현실 정치주의 vs 비(非)민주주의=민노당 이정희 대표가 8일 “(북한 세습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노당의 판단”이란 견해를 밝힌 이후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인터넷 논객, 블로거, 정치인의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민노당은 일종의 ‘침묵 노선’이다. 민노당을 이해하려는 쪽은 현실 정치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민노당이 운동 조직이 아니라 현실 정당이기 때문에 대놓고 북한을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판세는 민노당의 침묵 노선이 궁지에 몰리는 양상이다. 진보성향의 진중권씨가 민노당에 직격탄을 날렸다. 진씨는 “외교적 전략으로서 상대 체제를 존중하는 것과 진보정당의 이념적 지향으로서 특정 체제에 대한 견해를 갖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비판했다. 진씨는 트위터에 올린 ‘이정희 대표의 변명을 읽고’라는 글에서 “외교적 관계를 위해 체제 비판을 삼가자는 것은 오류”라며 “외교는 외교, 비판은 비판, 비판하면서 외교할 수 있다. 더구나 민노당은 외교부나 통일부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

북한을 보편적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 성향의 손호철(서강대 정치학) 교수도 비슷한 견해다. 손 교수는 “북한에서 정말 ‘최소한의 인권과 민주주의’만이라도 지켜진다면 진보진영의 커밍아웃은 불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민중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도 제대로 지켜주지 않으면서 왕조식의 세습으로 나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예전과 다른 ‘진보의 분화’=이번 논쟁은 한국 진보 진영의 전통적인 ‘민족해방파(NL)-민중민주파(PD) 노선 투쟁’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예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민노당이 진보신당으로 분당할 때만 해도 ‘NL-PD 논쟁’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이번엔 운동권 내부나 정당 안에서 쉬쉬하지 않고 있다. 북한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비판할 것은 하자는 분위기다. 대화를 말자는 것도 아니다. 북한과 대화하는 일과 비판하는 일을 병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 논객 진중권씨

진보 내 ‘북한 논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단할 수는 없다. 현 시점에서 북한 문제를 놓고 ‘진보의 분화’가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진보 내에서 북한에 대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던 분위기에서 북한을 ‘비민주주의 체제’로 보는 견해가 굳어져가는 분위기”라며 “이번 논쟁을 기회로 진보 세력이 북한에 대해 대화와 비판을 병행하는 태도가 확산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영대·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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