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싸움 번진 ‘우리금융’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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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올해 그리고 내년에 걸쳐 금융권의 최대 이슈다. 누가 우리금융지주를 인수 또는 합병하느냐에 따라 은행권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그래서 신경전도 뜨겁다. 민영화되는 우리금융지주나 눈독을 들이는 금융회사나 한마디 한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11일 우리은행과 하나금융지주가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이종휘 우리은행장이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의 용퇴 문제를 언급하자 하나금융 쪽이 발끈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양측이 감정 싸움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발단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연차총회를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이종휘 행장이 9일(현지시간) 기자간담회에서 한 얘기다. 이 행장은 “우리은행이 기업가치나 고객 구성, 인력에서 모두 앞서기 때문에 (하나금융과의 합병은) 우리은행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하나 쪽이 인수할 여력이 없어 어차피 합병해야 하는데, 합병을 해 생기는 제3 법인의 중심은 우리은행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까지는 합병의 중심이 하나가 아닌 우리금융이어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을 밝힌 것이다.

문제는 다음 발언이었다. 이 행장은 “김승유 회장과 관련해 신상변동 이야기가 들리더라”며 김 회장의 거취 문제에 대해 운을 뗐다. 그는 “김승유 회장이 합병을 성사시키고 대승적 차원에서 용퇴하는 것을 하나의 카드로 쓸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김 회장이)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과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겠느냐”고도 덧붙였다.

이 발언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 행장이 (김 회장의 용퇴 여부와 같은) 개인 신상 문제를 언급한 게 아니라, 그런 소문이 들리더라는 얘기를 전한 것뿐”이라며 확대 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발언의 파장은 컸다. 하나금융지주가 발끈했다. 이미 올 6월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내정자 시절에 “우리은행 인수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KB금융과 미묘한 감정싸움을 한 적이 있는 하나금융이 이번에는 최고경영자 용퇴까지 나오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하나금융은 김종열 사장 이름으로 ‘이종휘 행장 발언에 대한 입장’이란 보도자료를 내고 이 행장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이 자료에서 하나금융은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는 한국 금융의 구조개편과 미래가 걸려 있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며 “그런데도 타 회사 최고경영자(CEO)의 실명을 거명하며 용퇴를 운운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언행”이라고 강조했다.

민영화 방식에 대해서도 하나금융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금융권 지배구조의 전반적인 개선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구체적인 합병 방법과 지배구조를 제시하며 여론을 유도하는 것은 상도의에 어긋나고, 금융시장에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하는 부적절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런 하나금융의 요구에 현재 미국에 머무르는 이종휘 행장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익명을 원한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 행장이 12일 오후 귀국한 뒤 입장 표명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민영화의 주도권을 둘러싼 우리금융과 하나금융의 신경전이 표면화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앞으로 민영화 작업이 구체화할수록 양측의 대립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이달 중 우리금융 매각공고를 내고, 내년 1분기 중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한애란 기자, [워싱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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