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들 포트폴리오 제작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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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 사이에 포트폴리오 제작이 화제다. 대입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서 포트폴리오가 중요한 평가 요소로 떠오르자 초등학교 때부터 미리 준비해두려는 분위기다. 일부 학부모들은 다양한 비교과 활동 내역을 만들기 위해 소위 ‘스펙쌓기’에도 열을 올린다. 하지만 아이의 개성과 색깔이 묻어있지 않고 틀에 짜맞춰진 포트폴리오로는 입학사정관들의 눈길을 끌 수 없다.

아이의 성장 과정 가감없이 담아내야

#서울의 한 사립초등학교 6학년인 최모군은 국제중을 준비하고 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각종 올림피아드와 경시대회에 나가 여러차례 수상했다. 성적도 상위권이고 영어공인인증시험 점수도 좋아 주변에서는 최군의 합격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정작 최군은 입시를 준비하다 울상이 됐다. 자기소개서에 수상 경력은 기재할 수 없는 데다 마땅히 내세울만한 다른 활동도 없었기 때문이다. 최군의 어머니도 “이제와서 무슨 활동을 어떻게 보충해줘야 할지 몰라 난감하다”고 털어놨다.

#임수빈(서울 동산초 6)양은 7살 때부터 꾸준히 서예를 배우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한국 무용도 시작했다. 수빈이의 꿈은 외교관이다. 4학년 때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책을 읽은 뒤부터 외교관으로 진로를 정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서예와 한국 무용에 열심인 것도 이 때문이다. 수빈이는 “외교관은 우리나라를 외국 사람에게 알리는 직업이기 때문에 한국 고유 문화에 대한 소양을 더 쌓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 임현애(40·서울 송파구)씨는 “대입 때까지 아이가 한국 문화를 익히기 위해 노력해온 모습들을 포트폴리오로 정리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건국대 미래지식교육원 정철희 주임교수는 “포트폴리오에는 아이가 해온 활동에 대해 ‘왜’와 ‘어떻게’가 드러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껏 이런 활동을 해왔다’는 식의 결과물 모음집을 만들지 말고 아이의 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보라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실패한 결과물’도 과감히 노출하는 편이 낫다. 대회에 출전했다가 예상과 달리 부진한 성적을 거둬 수상에 실패한 것도 좋은 소재다.

정 교수는 “실패의 원인이 뭔지, 그 결과가 자신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가감없이 표현하다보면 연관이 없어 보이던 활동들 사이에도 이야기의 연결 고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활동은 다양하게…정해진 형식 없어

포트폴리오 제작에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포트폴리오 전체를 아이가 향후 전공할 분야에 맞춰 그와 관련된 활동들로만 채우는 것이다.

정 교수는 “초등학생들의 포트폴리오는 다양한 활동을 담는 게 핵심”이라고 조언했다. 초등학교 시절은 진로의 ‘상상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월드컵 시즌이면 축구 선수를 꿈꾸고, 음악회에 다녀오면 지휘자가 되고픈 것이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꿈을 ‘의사’로 정한 아이라도 ‘피아노 치는 의사’나 ‘국제 기구에서 활동하며 세계로 봉사를 다니는 의사’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 수 있도록 상상력을 자극해주고 최대한 많은 활동을 해볼 수 있게 권하는 편이 낫다.

정 교수는 활동에 대한 기록물을 만들 때는 “절대 꾸미지 말 것”을 대원칙으로 꼽았다. “남 보기 좋게 일정한 형식을 정해주면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제한을 받게 되거든요. 부모나 교사는 어설프고 서툰 표현에 대해 첨삭하는 대신 아이의 생각에 대한 피드백만 해줘야 합니다.”

스마트폰·블로그 활용해 제작하기도

입학사정관제에서 포트폴리오의 용도는 자기소개서에 대한 객관적 증빙이다. 무작정 방대하게 만드는 것은 좋지 않다. 자기소개서의 내용과 걸맞는 자료만 뽑아 간결하고 일목요연하게 구성해 제출하는 편이 명료한 느낌을 줄 수 있다.

학부모들은 포트폴리오에 기록할만한 비교과 활동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평소 자료를 모아두더라도 필요한 자료를 뽑아내는게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한양대 사회개 발원 심미향 교수는 “블로그를 활용해보라”고 조언했다. 리더십·창의적체험활동·독서·봉사활동 등을 각각 별도의 폴더로 구분해 사진과 감상문 등을 모아두면 한눈에 찾기도 쉽고 컴퓨터에서 내용을 재구성하기도 쉬워서다. 심 교수는 “블로그에 모아둔 자료는 CD나 디스켓으로 제출하지 말고 반드시 종이로 출력해 바인더 한 두권 분량으로 편집해 제시하라”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포트폴리오의 도구로 스마트폰까지 등장했다. 정 교수는 “자기소개서에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학생이 1~2년간 스마트폰으로 메모해둔 내역을 출력해 포트폴리오로 보여줘 입학사정관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포트폴리오 자료가 갈수록 방대하고 다양해지는 만큼 IT 기기를 적절히 활용하면 제작 속도도 빨라지고 스토리텔링도 편해지죠.”

[사진설명]임수빈양은 7살 때부터 서예를 배우고 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게 임양의 포부다.

<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 사진=김경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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