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이민 100년] 中. 독립자금 모금에 앞장 고 김익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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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일해 독립운동 자금을 적극적으로 댔던 김익주씨의 손자 다비드 김(左)과 동생인 아벨 김씨.

평양에서 전도사였던 김익주씨는 31세에 부인과 어린 아들(김동철)을 데리고 멕시코행 배에 올랐다. 그는 북한의 고(故) 김일성 주석과 사촌간으로 알려져 있다. "할아버지도 여느 사람과 같이 에네켄 농장에 배치됐으나 오래잖아 농장일에서 제외됐다"고 손자인 다비드 김(67)씨는 말했다. 농장주인이 그의 빼어난 그림실력을 보고 특혜를 베푼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에네켄과 씨름하지 않고 대신 농장 건물의 벽화를 비롯해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렸다.

메리다에서 4년 계약노동을 마친 뒤 김익주씨는 1911년 멕시코시티를 거쳐 멕시코만에 붙은 탐피코로 이주했다. 여기서 그는 냉차가게를 해 모은 돈으로 한국식 정자 모양의 멋진 2층짜리 식당을 지었다. 쿠바로 인삼을 팔러 다니기도 했던 그는 탐피코지방회를 설립했다. 당시 각종 행사에서 사용되던 태극기는 대부분 그가 그렸다고 한다. 그는 한인의 결속력을 높이고 독립자금을 모금하는 행사에 앞장섰다.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上海)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탐피코지방회 이름으로 여러 차례 송금했다. 다비드의 두살 아래 동생인 아벨은 "할아버지는 끝에 가서는 당신이 운영하던 식당과 가게를 모두 팔아 독립운동을 도왔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서동수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장은 "김익주 선생이 미주 국민회와 상하이 임시정부에 지원한 돈은 당시 가치로 4000달러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1917년 말부터 이듬해에 걸쳐 도산 안창호 선생이 멕시코 한인사회를 순방했을 때도 김익주씨가 후원자로 나섰다.

55년 81세로 타계한 김익주 선생은 멕시코에서 3.1운동 기념행사 등을 적극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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