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부터 '한국 민화전'…소박한, 그러나 도발적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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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화사하게 피어오른 모란이 탐스럽다. 그들먹한 꽃송이처럼 세상 만사가 넉넉했으면 좋겠다는 이름 모를 화공의 뜻이 전해진다. 12폭 병풍을 꽉 채운 '모란도'가 전시장에 봄 소식을 먼저 가져왔다. 23일부터 3월 8일까지 서울 견지동 동산방화랑에서 열리는 '한국 민화전'이다. 서민들 삶 속에서 꿈틀거렸던 민화(民畵)의 생생한 맛과 멋을 흐드러지게 즐길 수 있다.

민화는 조선조 선비들이 즐겨 그렸던 문인화나 화원들이 남긴 풍속화와 달랐다. 복 많이 받으며 오래 잘 살기를 원하는 평범한 사람의 바람을 자연이나 상징물에 빗대 담았다. 색깔도 화려하고 묘사도 직설적이다. 과감한 표현, 해학과 풍자, 놀라운 상상력 등 민화가 지닌 특징은 때로 몇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몹시 현대적인 작품으로 착각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터질 듯 무르익은 복숭아와 주렁주렁 달린 포도 송이를 함께 그린 '기명도(器皿圖)'(사진)에는 군자(君子)라는 두 글자가 담겼다. 요즈음 화가가 그렸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형태미가 새롭고 재미있다. 1층부터 3층까지 빼곡 전시장을 채운 민화는 대체로 보존 상태가 좋고 그림 솜씨도 뛰어나다. 대물림으로 고미술에 열성을 보여온 전문화랑의 저력을 보여주는 기획전이다. 02-733-5877.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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