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리말 바루기] ‘궁여지책’과 ‘고육지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9면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값이 고공 행진을 하자 최근 정부에서 중국산 배추를 긴급 수입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때의 정부 대책은 궁여지책일까, 고육지책일까?

궁한 나머지 생각다 못해 짜낸 계책이므로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봐야 한다. ‘고육지책(苦肉之策)’은 어려운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자기 몸을 상해 가면서까지 꾸며 내는 계책으로, 그 쓰임이 다르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미분양 물량이 쌓이자 건설업체들은 이자 부담을 감수하고 잔금을 유예해 주거나 분양가를 대폭 깎아 주는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에서의 대책은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고사의 유래를 알면 더 이해하기 쉽다. 적벽대전이 벌어지기 직전의 일이다. 오나라의 주유와 황개가 조조의 백만 대군을 물리치고자 거짓 항복 계책을 꾸민다. 조조와 그 첩자를 속이려고 주유가 황개의 말을 트집 잡아 살갗이 터지도록 곤장을 친 것. 얼마 후 거짓 정보에 넘어간 조조가 황개의 투항선단을 받아들이자 이 틈을 타 주유는 화공(火攻) 작전으로 조조의 함대를 물리쳤다. 얘기 속 황개처럼 ‘고육지책’엔 고통을 감내한 희생이 전제돼 있다는 걸 기억하면 ‘궁여지책’과 혼동할 염려가 없다.

이은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