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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민주당으론 안 된다는 열망이 나를 밀어준 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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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호 10면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어떤 대야망을 갖고 정치를 하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쟁해서 상처를 내는 정치가 아니라 선한 협력과 공동의 모색 속에 새로운 가치 창조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정치를 하고 싶다”고 했다.

10·3 민주당 전당대회에선 작은 이변이 일어났다. 이인영(47·서울 구로갑) 전 의원이 예상을 깨고 4위 득표를 해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과거 경선과 달리 이번엔 빅3(손학규·정동영·정세균)를 포함해 8명의 후보가 대표와 최고위원(5명) 자리를 놓고 겨뤘다. 후보 대부분이 과거 대선 후보나 당 대표 경선 등 전국 선거를 치러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그는 조직도 계파도 없다. 선거운동 기간도 고작 두 달뿐이었다. 486(4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후보 단일화도 최재성 의원이 출마를 강행하면서 깨졌다. 그런데도 4등으로 지도부에 들어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 힘은 무엇일까.

민주당 486 최고위원 이인영

7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오피스텔 ‘경희궁의 아침’에서 이 최고위원을 만났다. 그는 “민주당이 다음엔 꼭 정권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열망, 지금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변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었는데 (전당대회라는) 틈이 생기니까 터져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계파와 편가르기 정치가 당을 망칠 때는 준열하게 보안관으로서 역할을 하겠다”고도 했다.

- 승인이 뭐라고 보시나요.
“시·도당 대의원대회 다니면서 대의원들을 많이 만났는데 변화에 대한 열망이 있던데요. 이번에 꼭 바꿔야 한다는, 젊은 사람들이 새롭게 해야 한다는 열망요.”

-대의원들이 느끼는 불만은 어떤 거죠?
“2012년에 꼭 정권을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게 있어요. 지금 민주당 모습만 갖고는 모자라기 때문에 이걸 메우거나 넘어설 수 있는 대안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요. 이명박 정권에서 급속도로 삶이 나빠진 걸 느끼는 거죠.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도 내 삶을 해결해준 게 없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들어오는 걸 지지하거나 허용했는데 2년반 지나면서 훨씬 나빠진 걸 느낀 거죠. 외형적으로 성장은 있는데 고용은 없고 풍요는 있는데 빈곤한, 20대 80 사회에 대한 느낌이 오는 것 같아요. (18대 총선 때) 국회의원 떨어지고 2년반 처박혀 있으면서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한테도 느껴요. 중소기업은 대기업만 좋아지는구나 하고, 자영업체는 대형마켓만 좋아진다는 데 대한 분노 같은 게 있어요. 그런게 대중적으로 온 거고 좀 더 지나면 더 보편화될 것 같아요.”

-민주당에 대해서는요.
“보던 사람만 보는게 문제죠. 그래서 (후보들한테) 다 한 방씩 먹였잖아요. 누군 정체성 문제로, 또 누군 존재감이 없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가 있고, 젊은이들이 계파정치·하청정치 하지 말고 직접 해보라는 게 있었죠. 그게 시장·도지사 선거에서 터진 거고, 전당대회에서도 먹힌 거죠. 당 대표나 후보를 했던 사람들이 있으니까 노골적으로 표출되진 않았지만 바닥 사람들 맘속엔 계파, 낡은 질서, 낡은 관행을 뛰어넘었으면 좋겠다는 게 있어요. 제가 탈(脫)계파, 득표 위한 짝짓기는 안 하겠다고 한 게 새롭고 신선하게 보였던 것 같아요.”

이 최고위원은 6453표, 최재성 의원은 4051표를 얻었다. 둘의 표를 합치면 1만504표다. 3위를 한 정세균 전 대표의 득표수(1만256표)를 넘는 수치다.

-같은 486후보였던 최재성 의원과 단일화됐다면 대표 자리를 놓고 겨뤄볼 수 있었던 거 아닌가요.
“초반엔 단일화 성공하면 3대 1 싸움도 할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시너지도 있었을 테니까요. 근데 그게 주춤하면서 전략 수정을 했죠. ‘한 표는 현재권력인 빅3에게 찍는다면 또 한 표는 미래세력인 저한테 달라’고요. 전면적 세대교체에서 유의미한 득표를 하겠다는 걸로 바꾼 거죠.”

-이 최고위원이 주장하는 진보개혁정치란 뭔가요.
“전당대회 앞두고 호남을 다니면서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호남이 10년 집권했는데 복지·교육에 투자해서 호남이 교육이 좋은 데가 됐다, 복지와 일자리가 많아졌다고 하면 그 10년 동안 차이가 났을 텐데 하고요. 그런데 실제론 우리가 호남에서 많이 (표를) 얻었다는 정당적 패권의 차이만 있을 뿐 영남이 10년 집권한 것과 다른 게 없는 것 아닌가요?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제가 그랬어요. 금융위기가 삶의 위기로 오기 때문에 반드시 교육공약과 복지이슈가 먹히는 시대가 온다고요. 이번 지방선거 때 송영길 시장과 안희정·이광재·김두관·이시종 지사가 다 그런 얘기해서 당선된 사람들이에요. 이명박 정부의 잘못에 대한 반사이익도 있지만 우리가 맞는 얘기를 해서 사람들과 맞아떨어진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빅3 간 차기 경쟁이 뜨거울 텐데요.
“집단지도체제의 단점보다 장점을 잘 살릴 수 있을 거 같아요. 만약 단점이 나타나고 부정적 작용이 시작되면 보안관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 정도의 신념이나 사명감은 저한테 있어요. 계파와 편가르기 정치가 당을 망칠 때 준열하게 보안관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다부진 맘도 있고 그렇게 할 거예요.”

7·28 충주 재선거 패배로 출마 결심
이 최고위원은 학생운동권(고려대 84학번) 출신이다.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1987년 6·10 항쟁 직후 조직된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초대 의장을 지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달리 이 최고위원은 남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거나 감투를 좇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와 함께 전대협 부의장으로 호흡을 맞췄던 우상호 전 의원은 이 최고위원에 대해 “전형적인 충청도(충주) 선비 스타일이다. 아버지·형·누나가 모두 선생님이어서 집안 분위기도 조용하고 차분하다. 쑥스러움을 많이 타고 무슨 자리를 맡으려 뛰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옳지 않은 걸 보면 불같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스스로 486 단일후보를 자청했는데 좀 이례적이죠.
“7·28 충주 재선거에서 우리가 지는 걸 보고 내가 나서야겠다고 결심을 굳히게 됐어요. 6·2 지방선거 때는 분명히 시대정신이 있었는데 7월 28일에 샛길로 빠졌어요. 이 혼란을 종식하지 않으면 민주당은 2012년 대선에 못 이긴다고 생각했어요. 이명박 정권의 아류나 뒤를 잇는 정권이 더 나오면 나라 결딴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임종석 전 의원이 경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제가 해야겠다고 말했어요.”
그의 얘기는 한참 계속됐다.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고 얼굴은 상기됐다.

“제가 도저히 이해 못 하는 게 있어요. 비정규직 보호법 시한 연장(2년)이 안 되니까 정부가 앞장서서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해고하더라고요. 일자리를 만들어줘도 시원찮을 마당에 정부가 앞장서서 비정규직 해고하는 게 나라고 정부예요? 또 공정택 교육감이 당선돼서 서울시에서 24시간 학원영업하는 길을 트려다 못 했는데, 난 이런 거 사회악이라고 생각해요. 교육감이 말로라도 ‘학원 안 다녀도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도 되도록 하겠다’고 해야 되는 거 아녜요? 그런 게 조금 더 가면 20대 80의 양극화 사회가 오면 돈은 많아질지 모르지만 사람 사는 거는 아닌 거 같아요. 군사독재 속에 짓밟히면서도 그래도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꿈도 없어졌잖아요.

또 박근혜 의원이 복지를 열심히 준비한다고 하는데, 역사적으로 아버지는 선 성장, 딸은 후 복지해서 박씨 가문이 합리화되는 것도 속상하고요. 선 성장, 후 복지 패러다임은 한국사회가 가는 발전모델에선 안 맞는 거라고 생각해요. 진짜 복지는 성장과 복지가 같이 가는 거예요.”

486세대가 활동하던 당시 학생운동권은 이른바 주체사상파(주사파)가 득세했다. 김일성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지지하고 이를 행동지침으로 내세운 학생운동의 분파다. 이 최고위원을 비롯, 486세대 상당수가 주사파로 분류됐다.

-주사파였었죠.
“주사파라고 칭해졌던 사람이죠.”

-그때와 지금, 인식이 달라졌나요.
“그때는 모든 걸 편견 없이 읽어볼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한테 필요했던 게 사회변혁의 철학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우리의 실천은 대체로 민주주의나 평화통일 이런 데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변명하려는 게 아니라 주체사상주의자냐고 하면 솔직히 자신이 없어요. 민주주의자·애국주의자라고 얘기할 순 있지만 사회주의자라는 데도 역시 자신이 없었어요.”

-주사파가 아니란 말인가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주체사상이) 시대적으로 안 맞는 것도 있고요. 사회 갈등에 대해 구조적이고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잘 따져서 극복하려는 면에선 강점이 있지만 사회가 그런 면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당시에도 (지금) 뉴라이트 하는 사람이 저를 ‘불철저한 놈’이라고 한 적도 있어요. 전 주사파였다고 말할 수 없어요.”

-북한의 3대 세습 체제에 대해서는요.
“잘 이해 못 하죠. (김정은이) 그만큼의 사회적 공헌이나 역사적 인정을 받으면서 가면 그건 별개의 문제예요. 그가 사회적 공헌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말하는 게 그쪽 사람들이 볼 때 불편할지 모르겠지만요. 김정일은 주체사상 체계라도 이뤘다고 하지만 김정은이 지금의 (북한)사회로 되는 데 어떤 공헌과 어떤 역사적 위업을 세워 인정된 건지 그런 걸 잘 모르겠어요. 예를 들어 우리(486세대) 같으면 6월 항쟁, 이런 거라도 있잖아요. 그런 걸 기반으로 해서 리더십이 형성되는 거잖아요.그냥 이렇게 넘겨주면 되는 건가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또 국제사회에서 북이 개방의 길로 나오는구나 이런 것보다 굉장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해요.”

-북한이 불안정한 상황으로 가고 있는데요.
“그런 문제 때문에 우리가 집권하고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준비된 통일로 가는 게 제일 좋지만 준비가 덜 된 상태 속에서도 통일해야 되면 해야 된다는 편이에요. 민주당은 그런 상황이 오면 통일하는 쪽으로 갈 거 같아요. 한나라당은 그런 상황이 되면 남남이 될 거 같아요. 퍼주기 비난은 받았지만 김대중(DJ) 대통령이 달래고 노무현 대통령이 승계해 북한을 개방하는 쪽으로 온 거잖아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들어와 불과 2년 만에 전부 없었던 걸로 만들어버렸잖아요.”

-그게 이명박 정부 잘못인가요.
“이 대통령이 상당히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급격한 상황이 오면, 통일의 과정으로 가도 북이 과연 임할까 걱정해요. 신라로 고구려가 안 왔던 거 생각하면 그와 유사할지 모르겠다, 중국 쪽으로 많이 기울어질지 모르겠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5~10년 사이가 정말 중요한 시기고,그런 면에서 우리가 집권하고 있으면 다를 거예요. 지금이라도 이명박 정권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취했던 정책 스탠스로만 와도 우리 민족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어요.”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하면 결혼 못해요”
-국민들 사이엔 북한에 대한 심리적 상처가 있어요. 지원해줬는데 북한은 핵실험하고 관광객을 죽이고 급기야 천안함 사태까지 나니까 이성적으론 통일로 가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고 있는 거죠. 정치하는 사람은 당위와 현실, 이 두 가지를 다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둘은 고려하되 결국 더 큰 걸 고려할 수밖에 없어요. 작은 걸로 큰 걸 너무 망가뜨렸다고 생각하는 거죠.”

-민주당이 비판 받는 게 이런 국민의 상처를 외면하 기 때문이에요.
“난 아직 평양에 한 번도 안 갔어요. 저도 아직 평양을 편한 마음으로 못 가는 게 있는 거죠. 그러나 남북관계의 물줄기를 내기 위해 인내하고 가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얘기를 안 하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 상처를 다 내면서 가면 누가 봐도 안 맞잖아요. 결혼하고 싶은데, 결혼하기 전에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하면 결혼 못하잖아요.”

인터뷰 시간이 1시간30분을 넘고 있었다. 못다 한 질문은 다음 기회로 넘기기로 했다. 문을 나서기 전 “존경하는 정치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후배들이 그런 얘기하면 너무 집권력 없어 보인다고 하는데요. 김구·문익환 이런 스타일을 좋아했고 DJ 돌아가시고 나선 김대중 대통령을 다시 맘속으로 존경하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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