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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받은 중국 반체제 류샤오보의 가시밭길 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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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일(현지시간) 중국 반체제 인사인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베이징에 있는 그의 집으로 기자들이 몰려들자 공안이 이를 막고 있다. 이 집에는 투옥된 류샤오보의 부인 류샤가 살고 있다. 중국은 류샤오보의 수상과 관련, 노벨평화상 위원회를 강력히 비난했다. [베이징 AP=연합뉴스]

류는 1955년 12월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태어났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10대 청소년기에 중국 사회는 문혁(66~76년)의 광풍이 몰아닥쳤다. 극좌파의 사회 개조 실험이었다. 지식청년으로 분류된 그는 농촌으로 보내졌다. 건축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강요당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은 문혁의 암흑기에 있던 그의 인생에 한 줄기 서광으로 다가왔다. 77년 대학입시(高考)가 부활되면서 그는 수백 대 1의 경쟁을 뚫고 22세 늦깎이로 지린대학 중문학과에 입학했다. 거기서 그는 동서양 서적을 두루 접하면서 문학도로서 기초를 다지며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세례를 받았다.

학부 졸업 뒤 베이징으로 이주해 베이징사범대학에서 석·박사를 이수하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면서 그의 인생은 중산층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탄 듯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사상해방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80년대 중반 그는 반체제 운동에 눈을 뜬다. 당시 유명한 철학자 리쩌허우(李澤厚)를 비판한 ‘선택의 비판-리쩌허우와의 대화’를 쓴 게 계기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 문단에서 다크호스라는 필명도 얻었다.

중국 당국이 유혈 진압한 89년 6월 4일 천안문 민주화 운동은 그 스스로의 표현대로 인생에 중대 전환점이었다. 당시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방문학자로 머물던 그는 곧바로 귀국해 민주화 운동에 동참했다. 이 무렵 류는 허우더젠(侯德建), 가오신(高新), 저우둬(周舵)와 더불어 ‘천안문 사군자(四君子)’로 불렸다.

이후 그는 인민해방군이 인민을 총과 탱크로 짓밟은 초유의 사태에 진상 조사를 요구했으나 묵살당했고 당국은 그를 감시하고 탄압했다. 6월 6일 ‘반혁명 선전 선동죄’로 체포되면서 강단을 떠나야 했다. 작가로 전향한 뒤에는 ‘심미와 인간의 자유’ ‘알몸으로 하느님에게’ 등 비판적 글을 발표하면서 민주화 운동을 본격화했다. 95년 5월 베이징 교외에 1년간 감금됐으며 이듬해 10월부터는 3년간 노동교화형도 살았다.

그의 국제적 명성은 2003년 8월부터 국제펜클럽 중국 지회 회장을 맡으면서 높아졌다. 해외에 중국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해 2007년에는 당국에 억류되기도 했다.

류가 노벨상을 받은 결정적 계기는 2008년 12월 10일에 발표된 ‘08 헌장(憲章)’ 제정 주도다.

그를 포함한 중국의 교수·변호사·작가·언론인·의사 등 303명은 08 헌장에서 정치적 자유와 사법부 독립, 인권 보장 등 19개항을 중국 당국에 요구했다. 이 사건은 중국 국내외에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놀란 중국 당국은 2009년 6월 23일 ‘국가 전복 선동 혐의’로 그를 체포했다. 그해 12월 25일 베이징 인민법원에서 징역 11년 형이 선고됐고 올 2월 형이 확정됐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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