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용석의 Wine&] 드라마 등장 ‘라타슈’ … 불륜·쾌락을 좇는 주인공의 동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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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요즘 김수현 작가의 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화제다. 재혼한 가정을 배경으로 동성애와 같은 민감한 이슈를 다루며 잔잔한 인기를 끌고 있다. 재혼한 맏며느리부터 동성애자인 집안 장남까지 개성 있는 캐릭터들도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 중 재일동포이자 리조트 대표로 열연하는 장미희씨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이혼녀지만 소녀 같은 감성을 지닌 캐릭터를 우아하게 소화해 내며 드라마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그가 드라마에서 걸친 옷과 액세서리는 드라마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며 패셔니스트들의 호평을 받는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방송분 중 연인인 병준(김상중 역)과 다툰 그가 집에서 혼자 와인을 홀짝이는 장면이 등장했다. 당시 와인 레이블이 카메라에 선명하게 클로즈업됐는데 다름아닌 라타슈(La Tache·사진)라는 와인이었다.

라타슈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유명한 로마네 콩티를 생산하는 프랑스의 DRC가 독점 공급하는 와인이다. 최근 출시된 ‘라타슈 2006년산’의 경우 국내에서 한 병에 200만원이 훌쩍 넘는다. 라타슈를 수입하는 신동와인의 이준혁 소믈리에는 “로마네 콩티보다 생산량이 많아서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다”며 “로마네 콩티와 비교해도 풍미가 뒤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소품으로 보기엔 너무 귀한 와인이라서 기자는 트위터를 통해 김수현 작가에게 라타슈가 등장한 배경을 직접 물었다. 김 작가는 “난 와인을 잘 몰라서 와인에 대해선 장미희씨에게 맡긴다”며 “그분이 와인에 대해 박식하다”고 답했다. 신동와인 측은 “와인을 협찬한 건 아니지만 장미희씨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평했다.

타슈(Tache)는 프랑스어로 ‘얼룩’을 의미한다. 그래서 불륜이나 이혼 등 ‘얼룩진’ 사랑의 소재로 종종 등장한다. 영화 ‘스트레인저’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정신과 여의사를 유혹하면서 ‘라타슈 1961년산’을 내놓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장미희씨가 풀어가고 있는 애틋한 중년의 사랑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라타슈의 실제 맛은 어떨까.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는 자신의 단편집 『와인 한잔의 진실』에서 성적 쾌락을 좇는 남녀 관계를 그리며 라타슈에 대한 예찬을 슬며시 늘어놓았다. “라타슈는 복잡한 향기와 맛을 가지고 있다. 향기에 취해 있으면 혀의 감촉에 배신당하고, 혀의 감촉에 취해 있으면 맛에 배신당하고, 맛에 취해 있으면 다시 향기가 다른 쾌락을 전해준다.”

외국의 드라마나 영화에선 와인이 단순한 소품 이상의 의미를 가질 때가 많다. 와인이 가진 특유의 스토리를 에피소드나 캐릭터와 연결해 활용한다. 일본 영화 ‘실낙원’에선 불륜에 빠진 남녀 주인공이 보르도의 ‘샤토 마고’에 극약을 타서 마시고 동반 자살한다. 샤토 마고는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문호 헤밍웨이가 생전에 사랑했던 와인이다. 그는 샤토 마고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손녀에게 마고 헤밍웨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안타깝게도 손녀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손용석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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