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초대회장은 1910년 두산 창업주인 매헌 박승직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6년부터 부친이 운영하는 포목상 경영에 참여했다. 해방 후 운수업을 시작하면서 매헌이 “한 말 한 말(斗)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올려 산(山)같이 커져라”는 뜻으로 지어준 ‘두산(斗山)상회’로 이름을 바꾸고 회사를 키웠다.
그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경성고등상업학교(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1950년대에 직원을 미국·독일로 유학 보냈을 정도로 인재경영에 의욕을 보였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사람이 미래’라는 두산그룹의 철학은 고인의 뜻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1967년에는 대한상공회의소 6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1970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상공회의소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돼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폐암 수술을 받은 직후인 1973년 타계했다. 두산 관계자는 “고인은 폐암 수술을 받고도 대한상의에서 집무를 보는 등 마지막 순간까지 기업과 국가 경제를 위해 몸을 바쳤다”고 회고했다.
두산그룹은 박 초대회장이 타계한 지 5년째 되던 1978년, ‘국가 발전의 원동력은 교육’이라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연강재단을 세우고 각종 장학·학술·문화사업을 지원해 왔다. 5일에는 두산아트센터에서 박 초대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제정한 ‘제1회 연강예술상’ 시상식을 열었다. 만 40세 이하 예술인 가운데 공연·미술 부문 유망주로 꼽힌 박미나(37)·김시연(39)·구동희(36)·김낙형(40)씨를 첫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들에겐 상금과 전시회 비용 등을 포함해 총 2억원을 지원한다.
김기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