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수사기록을 둘러싼 검찰의 감정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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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검찰이 재판과정에서 수사기록을 법원에 제출하지 않겠다고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엊그제 어느 재개발 비리사건 공판에서 피고인과 증인 등의 법정 신문을 통해 진실을 입증하기 위해 수사기록을 미리 내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피고인의 방어권이 침해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특수2부장은 검사 작성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대법원 판례와 법원의 공판중심주의에 대한 대응책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수사기록을 중심으로 하던 재판 방식이 법정 공방을 통해 유.무죄를 가리는 형태로 바뀌고 있는 만큼 검찰의 공판 대책도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기록조차 보지 않은 상태에서 변호인이 어떻게 피고인을 제대로 방어할 수 있겠는가. 설령 피고인이 법정에서 범행을 부인하더라도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공소를 유지해야 할 책임은 검찰의 몫이다.

이번 사건의 수사기록 제출 거부가 법원의 잇단 구속영장 기각에 따른 법원과 검찰의 갈등에서 비롯된 감정적인 조치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 사건의 경우만 해도 돈을 받은 혐의가 있는 피의자에 대해 세 번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됐기 때문이다. 얼마 전 농약 홍삼사건 수사 때도 검찰은 17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이 가운데 13명이 법원에서 기각돼 버렸다. 물론 검찰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검사들은 공판중심주의를 '법원중심주의'라고 꼬집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으니 법원.검찰 간 감정싸움으로 비화하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재판 방식의 변화에 따른 공판 대책을 세우는 것은 마땅히 검찰이 서둘러야 할 일이다. 범죄자가 재판 형태가 바뀌었다고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가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지금 같은 수사방식에서 먼저 탈피해야 한다. 그러나 그 대책은 마련치 않고 수사기록만 넘기지 않겠다는 것은 일종의 월권이다. 이런 감정적 대응은 검찰의 신뢰만 떨어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