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느낌표 '눈을 떠요'…장기기증 문화 눈뜨게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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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2일 방송된 '!느낌표'에서 눈을 뜬 시각.청각 중복 장애인 박진숙(43)씨가 아들 원종건(13)군을 바라보며 감격스러워하고 있다.

한 방송 프로그램이 불을 댕긴 사랑의 장기 기증 운동이 사회 전체로 번지고 있다. MBC '!느낌표'가 지난해 12월 어려운 처지의 시각 장애인들에게 무료로 개안 수술을 해 주는 코너('눈을 떠요')를 내보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방송 후 각막 기증 서약자가 20배 가까이 늘었다.

◆ "부끄러운 장기 기증 현실, 스스로 극복하자"=현재 국내엔 2만여명의 시각장애인이 이식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한 해 각막 기증은 150~200건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 때문에 '!느낌표' 제작진은 서울 강남성모병원과 협력, 미국에서 각막을 기증받고 있다. 그간 빛을 찾은 시각장애인 여섯명 모두 '수입'각막으로 수술에 성공했다. 이런 부끄러운 현실이 TV로 전해졌고, 시청자들의 관심을 일깨웠다.

지난 한달간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 서약서를 제출한 각막 기증 희망자는 4738명. 이달 들어서도 17일 현재 2878명이 기증 의사를 밝혔다.

예년 한달 평균이 200~300명선이었던 것에 비하면 대단한 변화다. 지난해 1210명에게서 서약서를 받았던 '한국생명나눔운동본부'에도 올 들어 지금까지 400명이 장기 기증 의사를 밝혔다.

생명나눔운동본부의 조정진 사무총장은 " 일.월요일에 서약자가 몰리는 것으로 봐 토요일 밤 '!느낌표'가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 지도층과 연예인들의 움직임도 적극적이다. 지난달 28일 국회의원 104명이 동시에 장기 기증 서약 의사를 밝혔고, 탤런트 김지수.하지원 등도 나섰다. MBC와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는 다음달 4일 '각막 기증의 해 선포식'을 연다.

방송사 게시판에는 "말기 암 환자인데 각막을 기증하겠다"는 등의 사연이 100건을 넘었다. 출연자를 돕겠다는 제안도 이어진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박정규 PD는 "산골 소녀 영자의 사례가 되지 않도록 출연자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도움은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 국회선 법 개정 추진=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은 지난 5일 '장기 이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본인의 의사만으로 장기 기증이 가능케 하고 뇌사판정위원회의 판정 절차도 완화하는 내용이다.

현재는 본인이 서약했다 해도 장기를 적출하는 과정에서 유족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안 의원 측은 "16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종교.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닥쳐 상임위에서 폐기됐다"며 "이번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지영.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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