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부장 뽑는 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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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처음에는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뽑는 일이 무척 부담스러웠어요. 인터뷰 날이면 뿔테 안경에 진주목걸이.아줌마 브로치를 활용해 나이가 들어 보이도록 애쓰기도 했지요."

한국그런포스펌프(Grundfos Pumps) 인사부 서종희(29.사진) 대리의 별명은 '부장 뽑는 대리'다. 서씨는 3년 전 입사하자마자 채용.승진과 관련한 인사 업무를 맡았다. 신입 사원은 물론 과장.차장까지 서류 심사를 하고 1차 인터뷰까지 전담한다. 부장급 이상도 1차 서류심사 권한은 서씨의 몫이다. 서씨가 1차로 걸러내면 사장과 해당 부서장.서씨 등 3명으로 구성된 인사위원회에서 다시 심사한 뒤 사장이 낙점한다. 그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인사담당 매니저'라는 직함에 걸맞게 전 직원의 고과 데이터까지 관리하고 평가한다.

입사 전 경력이라고는 대학을 졸업한 뒤 프랑스계 은행에서 2년간 일했던 것이 전부인 서씨에게는 부담스러운 자리다. 권한이 '막강'하다 보니 오해를 사기도 한다. "혹시 사장 친인척이냐"고 묻는 동료도 있다.

이 회사 이강호 사장은 "직급과 나이에 관계없이 역할에 따라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회사의 원칙"이라며 "대만 법인 등 다른 현지 법인에도 서 대리처럼 젊은 인사 담당 매니저들이 있다"고 말했다.

서씨는 입사 후 지금껏 밤 11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거의 없다. 직원들의 직무 활동을 평가하고 관리하는 일은 물론 관련 세미나에도 빠지지 않고 참가한다. 덴마크 비에링브로에 있는 그룹 본사에 가 인사담당자 연수도 받았다. 지난 2년여 동안 고려대 경영대학원에서 조직 및 인사 관리를 공부했다. 그는 "이제는 회사가 원하는 인재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포스펌프=덴마크계 세계 최대의 펌프회사로 1945년 설립됐다. 펌프 한 제품으로 지난해 20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영국 버킹엄 궁전 등 세계의 대형 빌딩에 들어가는 수도시설 관련 펌프를 시공하고 있다. 한국 법인은 89년에 세워져 캐리비언 베이.타워팰리스.SK 사옥.삼성반도체 공장 등 대형.고층 건물에 펌프를 설치했다. 50명의 직원이 일하는 한국법인은 지난해 450억원의 매출에 45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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