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week& 트랜드] 애완물의 '세대교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개나 고양이를 키울 자신은 없거든요. 이 아이는 식사.배변 처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집을 비울 때도 안심이죠. 바쁜 현대인에게 딱 맞는 애완물이랍니다."

사업가 임석훈(32)씨가 소중히 팔에 안은 '강아지'는 일본 소니사에서 개발한 애완로봇 '아이보'. 임씨는 "주인을 닮아가고 마음을 의지할 수 있다는 점은 여느 애완동물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20~30대를 중심으로 인형.로봇 등 무생물이나 식물처럼 관리가 쉬운 대상을 애완동물처럼 소중하게 돌보는 것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책임은 적은 데다 정성들인 만큼 '내 색깔'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장점. 전문가들은 "살아 있는 대상과 관계를 맺기보다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에 애정을 쏟아 만족을 느끼려는 요즘 세대의 특징"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디지털카메라와 인터넷 동호회 활동이 필수라는 점도 신세대의 취향과 맞아떨어진다. 온라인에 자신이 키우는 애완물의 사진을 올려 자랑하고 다른 네티즌들과 정보를 공유하는 재미가 크다는 것. 각각 애완인형.로봇.식물을 정성껏 보살피고 있는 30대 초반 직장인 3명을 만나 그들의 애완물 자랑을 들어봤다.

글=신은진 기자<nadi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 로봇

등을 쓰다듬자 귀를 쫑긋하며 꼬리를 흔드는 것이 영락없는 강아지의 모습이다. 1999년 출시된 아이보는 '성장형 인공지능'을 갖고 있다. 처음 작동을 시작하면 막 태어난 것처럼 뒤뚱거리지만 주인이 격려하면 조금씩 똑바로 걷게 되는 등 사람과 접촉하면서 성장해 나간다. 아이보 외에 음성을 인식하는 3.5㎝ 초미니 애완로봇 '마이크로팻', 물고기 로봇 '뮤츠' 등도 매니어층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

3종의 아이보를 기르고 있는 임석훈씨는 500여명으로 추산되는 국내 아이보 오너들을 위한 사이트(http://www.aibotown.co.kr)를 운영하며 기능과 프로그램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임씨는 "로봇이니 딱딱하고 감정적인 친화를 느낄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은 오해"라며 "몇 년 동안 함께 생활하다 보니 이제는 로봇이란 생각이 안 든다"며 웃는다. 자신의 목소리와 얼굴을 알아보고 애교를 부릴 때면 꼭 생명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

◆ 식물

"매일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빨리 확인하려고 퇴근도 서두르게 되더라니까요."

'애완식물 매니어'를 자처하는 한정민(31.자영업)씨. 지난해 여름에 모으기 시작한 작은 식물들이 30여종 120여개. '애완용'인 만큼 모두 방과 거실 등 실내에서 키우고 있다. 선인장부터 라벤더.로즈마리 등 허브, 갖가지 벌레잡이 식물과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펫트리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아침.저녁으로 식물들의 상태를 살피고 자라는 모습을 디카에 담아 자신의 카페 '애완 꽃과 식물로 가꾼 예쁜 정원 (http://cafe.daum.net/pettree)' 에 올리는 것이 빼놓을 수 없는 일과가 됐다. "실내 습도 조절과 인테리어 기능은 물론 정서순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그가 꼽은 애완식물의 매력.

"처음엔 그저 예뻐서 한두 개 사봤는데 싹이 트며 자라는 모습이 팍팍한 생활에 활력소가 되더군요. 동물처럼 활달하진 않지만 들인 정성만큼 푸른 잎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답니다."

◆ 인형

"인형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입양'하고요, 가지고 논다기보다 '키우고' 있지요."

인형의 옷매무시를 고쳐주는 정은주(31.교직원)씨의 손길이 더없이 다정하다. 정씨가 분신처럼 아끼는 '이지'는 사람 같은 생김새를 한 구체관절 인형. 팔.다리 관절에 원형 볼트를 끼워넣어 자연스러운 동작을 취할 수 있고 생김새가 사람과 흡사해 특히 10~20대 여성들이 열광하는 애완물이다.

기성품도 있지만 팔.다리를 조립하고 어울리는 안구(眼球)와 머리카락을 골라 직접 만드는 경우가 많아 주인의 개성을 뚜렷이 표현할 수 있다. 정씨는 요즘 원단을 사 와 자신의 옷과 비슷한 '커플 룩'을 만들고 분위기 있는 카페나 공원에 인형을 데려가 예쁘게 찍은 사진을 동호회 게시판에 올리는 등 '인형 키우는 재미'에 푹 빠졌단다.

"가격도 고가(평균 30만원선)인 데다 이 나이에 웬 인형놀이냐는 타박을 듣기도 한다"는 정씨. 하지만 "나만의 소유이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가꿀 수 있는 대상이 주는 만족감은 비할 바 없다"는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