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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김진의 시시각각

인류사 최악의 특채, 김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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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코리아 문명’은 놀라운 속도로 세계기록을 생산했다. 반도체·TV·휴대전화·조선 같은 핵심산업에서 세계 1위를 정복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과 가장 큰 화물선을 만들었다. 수천만밖에 되지 않는 인구가 세계 스포츠 1위를 경이롭게 점유하고 있다. 박세리·신지애·김연아·박태환에다 양궁·탁구·야구·빙상·쇼트트랙에서 세계 우승을 기록했다. 최근엔 축구에서마저 17세 처녀들이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사회주의 스포츠 기계군단’을 만들었던 소련이나 동독도 이렇게 다양하게 세계 1위를 차지하진 못했다.

북한은 장기집권에서 세계기록을 만들었다. 김일성의 49년(1945~94)에 필적하는 건 쿠바 카스트로의 49년(1959~2008)뿐이다. 현재 이 기록을 깰 수 있는 권력자는 리비아의 카다피뿐이다. 그는 집권 41년인데 조만간 차남이 승계할 전망이어서 ‘김일성 49년’은 불멸(不滅)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권력세습에서도 북한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대기록을 쌓아가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은 이미 65년이다. 김정은이 장기집권에 성공하면 북한의 3대는 100년을 갈지 모른다. 왕조도 아니고 공화국 시대에서 이런 기록은 깨질 수가 없다. 북한 말고도 부자세습의 나라는 더러 있다. 그러나 형식적으로라도 대개 선거를 거친다. 시리아는 아버지의 29년 집권 이후 아들이 선거로 10년을 버티고 있다. 내전의 나라 아프리카 콩고에서도 선거는 있다. 군벌 지도자 아버지가 집권 4년 만에 암살되자 2001년 아들이 선거라는 형식을 통해 집권했다. 선거가 없는 후계지명은 북한이 거의 유일하다.

국가 테러에서도 북한은 세계기록 보유자다. 물론 북한 말고도 테러를 저지른 국가는 많다. 78년 사회주의 남(南)예멘은 특사의 폭탄 가방으로 북예멘 대통령을 폭살(爆殺)했다. 그러나 북한처럼 다양하고 잔혹하게 동족을 공격한 기록은 별로 없다. 남한의 대통령 거처에 암살부대를 보내고, 외국의 수도에서 남한 대통령 일행에게 폭탄을 터뜨리고, 미모의 테러리스트로 비행기를 폭파하고, 죽음의 잠수함으로 남한 군함을 폭침하고…테러사(史)에 영원히 남을 기록이다. 수억 달러가 없어 국민은 굶주리는데 정권은 수십억 달러로 가장 비싼 무기를 개발했다. 이것도 세계기록일 것이다.

남한의 세계기록이 양지(陽地)와 천국의 기록이라면 북한은 음지와 지옥의 기록이다. 이 나라의 좌파와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이들은 박정희 18년 집권은 규탄하면서 북한의 65년 3대 세습엔 침묵한다. 김정은은 인류 사상 최악의 특채다. 남한의 이상한 사람들은 외교통상부의 특채엔 분노하면서 북한의 거대하고 괴이한 특채에 대해선 입을 다문다. 치사율이 1억 분의 1도 되지 않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선 광분하더니 치사율 100%의 북한 핵에 대해선 외면한다. ‘양지의 나라’에서 10년 집권의 은혜를 입은 이들이 그 나라의 국민 46명을 죽인 ‘음지의 범인’을 감싸고 있다. 이들의 거대한 미망(迷妄)도 또 하나의 세계기록일 것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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