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 러시아 스킨헤드족(극우민족주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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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러시아의 극우민족주의가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러시아인만을 위한 러시아'를 외치는 극우민족주의자(스킨헤드족)들의 유색인종에 대한 횡포가 날이 갈수록 심해져 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 교민들도 잦은 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잇따르는 폭력=지난 11일 밤 러시아 제2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한국 유학생 3명이 스킨헤드족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20대 청년 10여명이 현지 고등학교 과정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을 기습 공격했다. 시내 최고 중심가 그리브초바 거리에 위치한 한 학생의 집 근처에서였다. 빡빡 깎은 머리에 검은 가죽 점퍼를 입고 군화를 신은 청년들은 "찢어진 눈을 가진 놈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며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쓰러진 한 학생은 10여 군데를 칼로 마구 찔려 중상을 입었다.

지난해 10월에는 페테르부르크에서 베트남 유학생이 스킨헤드족들로부터 온몸을 칼에 찔려 사망했다. 같은 달 시베리아 중부 도시 치타에서는 중국인이 청소년 두명이 휘두른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2월에는 남부 도시 보로네슈에서 아프리카 출신 유학생이 극우주의 청년들에게 몰매를 맞아 사망했다.

◆ 러시아 스킨헤드족=머리를 빡빡 깎고 다니며, 극단적 외국인 혐오증을 가진 극우민족주의자들을 러시아에선 '스킨헤드(Skin Head)족'이라고 부른다. 살이 드러날 정도로 짧게 깎은 머리 모양을 빗댄 말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모스크바.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에서 흑인.아시아인.러시아 남부 카프카스 출신 등 유색인종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 문제가 됐다. 한때 잠잠했으나 2000년 집권한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애국주의적인 성향이 이들의 활동을 부추겼다. 폭력 수위도 한층 높아졌다.

길거리나 지하철 등에서 욕설을 퍼붓고 손발로 구타를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체인.칼 등의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하는 경우도 잦아졌다. 러시아에는 5만여명의 스킨헤드족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 스킨헤드 증가 이유=극우주의자들은 "각종 범죄.마약밀매.매춘 등은 개방 이후 쏟아져 들어온 외국인들로부터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일반 시민들이 품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혐오증도 스킨헤드족 증가에 기여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60%에 달하는 러시아인들이 외국인에게 반감을 갖고 있다. 정치권 내의 극우주의 정당들은 이런 생각을 부채질하고 있다. 정부도 극우주의 퇴치에 소극적이다.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여론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극우주의자들의 주장이 현 정부의 애국주의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더 큰 이유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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