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서 무죄 판결 땐 “검사 항소권 제한하자”제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시민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올 경우 검사의 항소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법학계의 형사소송법 개정 의견이 나왔다. 또 법적 성격이 모호한 내사(內査)와 지명수배의 근거 조항을 마련해 인권 침해 소지를 줄이는 등 수사 과정을 보다 투명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원장 박상기)과 한국형사법학회(회장 정영일)는 30일 ‘형사소송법 개정의 쟁점과 검토’라는 주제의 공동학술회의를 열고 형사소송법 개정연구회가 마련한 개정시안을 발표했다.

개정시안은 형사소송법의 항소 관련 조항에 “검사는 배심원의 평결과 재판의 판결이 일치하는 무죄 판결에 대해선 ‘사실 오인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로 항소할 수 없다”는 내용의 단서를 붙이도록 했다. 서강대 이호중(법학) 교수는 이날 “엄정한 절차를 거쳐 선정된 시민들이 공소 사실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가지게 됐다면 상소심에서도 이를 존중하는 것이 국민참여재판제의 취지에 맞다”며 “법률 위반에 대해서만 항소와 상고를 허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참여재판이 시행된 이후 지난 7월까지 1심 판결 229건 중 절반이 넘는 129건(56.3%)에 대해 검찰이 항소했다. 특히 검찰은 무죄가 선고된 사건에 대해선 모두 항소를 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참여재판에서 무죄로 나온 사건이 항소심에선 유죄로 뒤집히는 경우도 있다”며 “참여재판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데는 찬성하지만 일률적으로 항소를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내사와 관련해선 사건 당사자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법에 “수사개시 전 단계에서 피내사자의 동의를 얻어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근거 규정을 두도록 했다. 내사는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하기 전 입건하지 않은 상태에서 범죄 혐의가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박미숙 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검찰에서 ‘내사사건’이나 ‘진정사건’의 영역이 급속도로 확대돼 가고 있다”면서 “내사에서 가능한 수사 수단을 엄격히 제한하고 투명한 관리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검사가 고소인의 진술을 듣던 중 고소인을 무고죄로 긴급체포해 검찰청 구치감에 수용한 뒤 20시간 후 내사 종결 처분으로 석방한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시안에는 ▶지명수배 영장제도를 도입하고 발부 대상도 ‘사형,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구체화하며 ▶현재 최장 6개월로 규정된 출국금지 기간을 3개월로 단축하는 등의 개정 사항도 포함됐다.

최선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