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82) 저우서우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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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홍콩을 방문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 일리노를 영접하는 홍콩의 중국인 영수(香港大老) 저우서우천. 당시 92세였다. 김명호 제공

1949년 5월 중순, 중국인들이 ‘香港大老’라고 부르는 태평신사(太平紳士:홍콩총독이 임명하던 명예직. 시민의 입장을 대변했다. 97년 중국의 특별행정구가 된 후엔 행정장관이 임명) 저우서우천(周壽臣)은 낯선 우편물을 한 통 받았다. 발신지는 옌안(延安) 푸광(複光)로 37호. 보낸 사람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열어보니 일면식도 없던 마오쩌둥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오른편 상단에 “수신선생혜존(壽臣先生惠存)”, 왼편 하단엔 마오의 이름과 도장이 찍혀 있었다. 마오는 생전에 수많은 글씨를 남겼지만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또박또박 쓰고 말미에 낙관을 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중국인들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름은 들었지만 만날 기회가 없었던 사람과 이런 방법으로 교제를 트곤 했다. 결혼을 앞둔 여인들도 붓글씨에 자신만 있으면 마오가 저우에게 보낸 것처럼 자신의 사진을 남편 될 사람에게 선물로 보냈다.

겉봉의 주소를 다시 확인한 저우는 마오가 2년 전 옌안에서 철수하기 전에 준비해 두었던 것이겠거니 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신중국 선포 5개월을 앞둔 마오쩌둥이 90이 다 된 홍콩의 노인에게 먼저 손을 청했을까?

마오쩌둥은 베이징 교외 샹산(香山)에 머물던 시절 이 사진을 저우서우천에게 보냈다. 마오의 거처는 특급 보안사항이라 발신지를 옌안으로 하는 바람에 저우서우천을 잠시 헷갈리게 했다.

1949년 5월 중순, 중국인들이 ‘香港大老’라고 부르는 태평신사(太平紳士:홍콩총독이 임명하던 명예직. 시민의 입장을 대변했다. 97년 중국의 특별행정구가 된 후엔 행정장관이 임명) 저우서우천(周壽臣)은 낯선 우편물을 한 통 받았다. 발신지는 옌안(延安) 푸광(複光)로 37호. 보낸 사람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열어보니 일면식도 없던 마오쩌둥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오른편 상단에 “수신선생혜존(壽臣先生惠存)”, 왼편 하단엔 마오의 이름과 도장이 찍혀 있었다. 마오는 생전에 수많은 글씨를 남겼지만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또박또박 쓰고 말미에 낙관을 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중국인들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름은 들었지만 만날 기회가 없었던 사람과 이런 방법으로 교제를 트곤 했다. 결혼을 앞둔 여인들도 붓글씨에 자신만 있으면 마오가 저우에게 보낸 것처럼 자신의 사진을 남편 될 사람에게 선물로 보냈다.

겉봉의 주소를 다시 확인한 저우는 마오가 2년 전 옌안에서 철수하기 전에 준비해 두었던 것이겠거니 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신중국 선포 5개월을 앞둔 마오쩌둥이 90이 다 된 홍콩의 노인에게 먼저 손을 청했을까?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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