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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편 보고 가세나] 44. 정일성 촬영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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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영화 '춘향뎐'을 촬영하고 있는 정일성 감독.

2002년 서울의 한 극장에서 '취화선' 시사회를 열었다. 영화가 끝나고 홀에 서 있는데 단정한 차림새의 중년 부인이 다가와 인사를 했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네? 왜요?" "아버님이 이토록 훌륭한 작품을 찍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일성 촬영감독의 맏딸이었다. 예기치 못한 인사를 받고 당황한 나는 "천만에요. 제가 되레 아버님께 좋은 영화 많이 찍어줘서 고맙다고 해야죠"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런 인사를 건넬 줄 아는 딸을 둔 정 감독이 부러웠다. 부전여전이라더니, 서울대 나온 딸이 행실도 남달랐다. 정 감독 자신도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이 아니었던가. 며칠 뒤 정 감독에게 "내가 정형한테 해야 할 인사를 따님이 합디다. 자식들을 어찌 그리 잘 키우셨소. 부럽습니다"고 했다.

나는 영화란 만드는 사람의 그릇만큼 나온다고 믿는다. 똑같은 이야기를 가지고도 감독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작품의 질은 천차만별이다. 내가 임권택.정일성 감독과 오랫동안 일을 해온 건 단지 나와 비슷한 연배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만한 인품을 가진 이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0년 다른 영화사 작품인 '만다라'를 준비하던 때였다고 한다. 당시 정 감독은 직장암에 걸려 서울 백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고 있었다. 몸무게가 38㎏까지 내려간 상태였다. 어느 날 임 감독이 병원을 찾았다. "정형, 이렇게 누워 있으면 어떡해요. 빨리 나랑 작업합시다." 병석에 있는 사람한테 '만다라' 촬영을 맡긴 것이다. 다른 촬영기사들을 제치고 굳이 자기를 찾아준 임 감독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단다.

정 감독은 2주일 더 입원해야 한다는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바로 현장으로 나갔다. 당시 충무로 일각에서는 "암 환자에게 촬영을 맡기다니 임 감독이 정신나간 거 아냐. 송장 치울 일 있어?"라며 쑥덕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정 감독은 이런 비아냥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사히 작품을 끝냈다. 어디서 에너지가 솟는지 힘든 줄 모르겠더라고 했다.

"이 사장, 내가 가진 게 뭐 있소? 그저 영화가 좋아 카메라를 잡았고 작품에 뛰어들면 저절로 신명이 나는 사람입니다. 카메라 메고 죽는 게 내 마지막 소원이오." 10여년 전 '장군의 아들'을 찍을 때 정 감독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고백을 들으며 그 뜨거운 열정에 감동해 눈시울이 뜨거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 감독과는 83년 '비구니' 때부터 작업을 같이했다. 이 작품은 외압으로 결국 완성되지 못했지만 이후 '장남' '장군의 아들'시리즈, '서편제' '태백산맥' '춘향뎐' '취화선' '하류인생' 등 모두 여덟 편의 영화를 같이했다. 29년생인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촬영장에서는 웬만한 젊은이 못지 않은 정력을 과시한다. 영화장면 중에는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찍어야하는 경우가 있다. 임 감독도 '들고 찍기'가 힘이 부칠 걸 알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그에게 맡기지 않는다. 그러나 젊은 기사들한테서는 원하는 느낌을 얻지 못해 결국은 정 감독을 쳐다보게 된다. "정형, 괜찮아요?" "아, 물론이죠."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를 들쳐멘다. 그리고 정말 날아다니듯 경쾌하게 움직인다.

'미쳐야(狂) 미친다(及)'는 말이 있다. 정 감독을 볼 때마다 그 말을 실감한다. 그의 정신과 열정을 본받은 후배들이 더욱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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