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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국제 장물차량' 사각지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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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해 11월 다임러크라이슬러 위르겐 슈렘프 회장이 벤츠 S600 차량을 도난당했다. 이 차량은 슈렘프 회장이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내에 주차해 놓고 20분 정도 다른 일을 보는 사이 사라졌다. 독일 경찰은 이 차량이 자동차 트레일러에 실려 러시아나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로 옮겨진 뒤 해외로 밀수출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유럽 등지에서 도난 승용차의 수출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국내에서도 외국의 도난 차량이 반입된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국내에선 차량등록사업소를 통해 도난 여부를 알아볼 수 있다. 반면 해외에서 도난당한 차가 전문적인 조직을 통해 국내에 반입돼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국제 장물 차량'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현재 수입자동차 총 등록대수는 14만5444대이며, 지난 한 해에 신규 등록한 차량은 2만8694대. 이 중 수입차 업체가 본사가 아닌 해외 딜러와 직접 접촉해 수입한 차량은 4000여대에 달한다. 수입차 업계에서는 국내에 유통되는 국제 장물 차량이 수백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행거리를 조작하거나 연식 표기를 위조해 새 차로 둔갑시킨 외국의 도난 차량이나 사채업자들의 압류 차량 등이 국내에 들어오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고급 외제 차량의 비정상적인 수입은 대부분 일본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리가 가까운 데다 안전검사 방법이나 소음.배출가스 기준 등 관련 법규가 우리나라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외제 차량의 구입에 따른 피해를 구매자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점이다. 벤츠나 BMW 등에서는 각 차량의 수리기록이나 분실 여부.판매처 등의 정보를 컴퓨터에 저장해 관리하고 있다. 차량 도난 사실이 본사에 알려져 데이터에 입력되면 문제의 차량을 구입한 차주들은 자동차에 큰 결함이 생겨도 본사에서 관련 부품을 구하지 못하고, 애프터 서비스도 받을 수 없다.

원소유주에게 차량 도난에 대해 보상한 외국의 보험사가 한국 내 차량 소유주와 수입업자를 상대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소유권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하거나 장물 취득 또는 절도 범죄의 공범으로 형사고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손해용.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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