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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한마을 세 노인 '강제동원 피해' 신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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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 강제동원됐던 당시를 회고하는 박종득, 김순형, 김종억씨(왼쪽부터).

일제강점기 잇따라 노무자.군인 등으로 끌려갔던 충남 천안시 직산읍 군서리 같은 마을 젊은이 3명이 나란히 강제동원피해 신고를 했다.

"보상받으려는 생각보다 우리가 겪은 일과 가슴에 담은 한을 국가가 알고 있어야겠기에…"

당시 전국이 그랬듯이 충남 천안 직산읍 군서리 젊은이들도 일제의 징용.징병 대상이었다.

김순형씨(82)는 김씨는 1943년 12월 어느날 자다말고 면직원에게 끌려가 2년 뒤에나 돌아올 수 있었다. 천안군에서 직산.성환.목천 등 3개 면에서 50명씩 150명이 일본 시코쿠의 한 비행장 건설에 투입됐다. 김씨는 "당시 쌀 두말 값 정도인 월급 5원을 받았으나 밥값 등을 빼면 손에 쥐는 건 거의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듬해 1월 김씨보다 세살 어린 박종득씨(79)는 18살이었으나 해군 군속으로 뽑혔다.

박씨는 "당시 20살 넘은 동네 형들이 많았으나 징병관련 직원이 아버지와 사이가 안좋아 내가 뽑혔다"고 털어놨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친 큐슈의 한 채석장에서 20개월간 일했다.

김종억씨(81)씨는 44년 5월 결혼한지 10개월만에 징병됐다. 동갑내기와 결혼한 김씨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옻나무 껍질을 벗겨 온몸에 옻칠을 했으나 일본 해군에 입대해 일본 군함에서 해방을 맞았다.

이들은 "우리보다 더 억울한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한을 꼭 풀어줘야 한다"고 입모아 말했다.

글.사진=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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