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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 잡는 고추·마늘의 매운맛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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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호 18면

엄밀히 말하면 매운맛은 없다. 맛은 단맛(sweet)·짠맛(salty)·신맛(sour)·쓴맛(bitter) 등 네 가지뿐이다. 이 넷의 조합에 의해 세상의 온갖 맛이 생긴다는 것이 서양의 ‘4원미설’이다. 최근엔 ‘우마미(감칠맛)’를 제5의 맛으로 인정하고 있다. 네 가지 기본 맛은 혀의 미각(味覺) 세포가 감지해 낸다. 그러나 매운맛을 인식하는 세포는 미각 세포가 아니라 통증을 느끼는 통각(痛覺) 세포다.

박태균의 식품이야기

음식의 매운맛 성분은 캡사이신과 알리신이다. 캡사이신(capsaicin)은 고추에 0.2∼0.4% 함유돼 있다. 특히 씨에 많이 들어 있다. 맵기로 소문난 청양고추의 캡사이신 함량은 일반 고추의 6∼7배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은 “씨가 작은 고추가 큰 고추보다 캡사이신 함량이 높다”는 뜻이다.

캡사이신은 그동안 웰빙 성분으로 통했다. 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성분으로 널리 소개됐다. 일본에선 지방 분해를 돕는 물질로 소문나 다이어트를 원하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고춧가루 붐이 일게 했다. 소화를 돕고, 술과 자극적인 음식으로 인한 위장 손상을 막아 주는 성분으로 인식됐다. 그래서 서양 술꾼들은 마르가리타를 마실 때 캡사이신이 든 살사를 함께 먹는다고 한다. 살모넬라균·포도상구균 등 식중독균, 위궤양·위암의 원인균인 헬리코박터균을 죽이는 데도 유효한 것으로 알려졌다. 혈압을 낮춰 주고 폐암을 비롯해 백혈병·전립선암·피부암 등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그런데 최근 캡사이신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국내에서 제기됐다. 암 발생을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건국대 생명공학과 이기원 교수팀은 생쥐 피부에 캡사이신을 발랐더니 암 유전자(EGFR)의 활성이 높아지고, 염증 유발 단백질(COX-2)이 생성돼 피부암이 촉진됐다고 외국 유명 학술지에 발표했다. 이 교수는 “암을 예방하려면 고추의 매운맛에 집착해선 안 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연구에 참여한 다른 학자는 “이번 결과를 고추가 암을 일으킨다고 확대해석해선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고추엔 비타민C·폴리페놀·카로티노이드 등 항산화 성분들이 풍부해 득실을 따져 보면 건강에 이로운 채소라는 얘기다.

서울대 약대 서영준 교수는 “우리도 생쥐를 이용해 똑같은 실험을 해 봤다”며 “캡사이신을 생쥐 피부에 발랐더니 염증 전달 단백질인 NF-카파B가 억제돼 피부암 발생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이래저래 고추 애호가들은 혼란스럽게 됐다.

캡사이신이 자극성 성분이란 것은 분명하다. 최루탄에도 들어간다. 식도·위·소장 등 소화기관을 거치는 동안 거의 흡수되지 않는다. 고추를 먹으면 항문 부위에서도 자극이 느껴지는 것은 이래서다.

알리신(allicin)은 마늘에 든 매운맛 성분이다. 마늘을 자르거나 빻을 때 유황 성분인 알린이 알리신으로 변한다. 알리신은 캡사이신처럼 각종 세균을 죽이는 항균 효과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마늘은 식중독 예방을 돕는 식품으로 평가된다. 알리신은 또 혈관을 확장시켜 혈액이 잘 돌게 한다. 그래서 동맥경화·고혈압·뇌졸중·심장병 등 혈관질환 환자에게 마늘을 권한다. 알리신은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의 분비를 도와 당뇨병 환자에게도 유익하다. 강력한 항암 성분으로도 기대를 모은다.

매운 음식 사랑도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 하다. 기분 전환을 위해 일주일에 한두 번 식탁에 올리는 것은 좋지만 상식(常食)·과식하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특히 위에 부담을 준다. 매운 음식을 과다 섭취하면 위가 직접 자극을 받으며 보호막인 위 점액의 분비가 줄어든다. 이에 따라 미란성 위염, 위 경련, 위궤양이 생길 수 있다. 또 위의 통각 세포를 자극해 명치 끝에서 통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위 신경의 감각을 무디게 할 수도 있다. 이는 과식과 염분 섭취를 늘리는 요인이다. 위염이 심하거나 위 절제 수술을 받았거나 위암 환자라면 매운 음식의 섭취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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